바오로인은 성바오로의 표양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갑니다.
(창립자 G.알베리오네)
(창립자 G.알베리오네)
복자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는 성체의 신비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의 뜻에 따라 바오로가족을 창립했다. 대격변의 시기에 하느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으로 사회 커뮤니케이션 사도직을 교회에 도입하였다. 바오로 사도의 정신을 따르기에 바오로가족 하나하나를 바오로인이라 부른다. 그 가운데 성바오로수도회는 가장 효과적이고 현대적인 매스컴 수단을 사용하여 선한 출판을 행하는 수도 공동체이다.
성바오로수도회의 활동
“여러분은 세상의 빛이 되십시오.(1966.4.21.창립자 서한)”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삶과 서간으로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였다. 성바오로수도회 수도자들은 취향이나, 명예, 벌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성바오로 사도처럼 세상의 복음화를 위해 자신의 시간, 재능, 힘, 건강 모두를 바친다(Ad64; DF 70in). 바오로 사도의 정신으로 신자들의 필요와 요구에 응답하며 SNS, 영상, 인쇄, 음반 등을 이용하여 복음을 세상에 전하고 있다.
창립자 복자 알베리오네
새시대를 맞아 문화 영성 공간을 마련하였습니다. 다양한 강좌뿐 아니라, 전시와 연주회 등도 가능합니다.
고(故) 유광수 야고보 수사님이 시작했습니다. 현재 양은철 안드레아 수사님과 말씀학교 수강생들이 말씀을 통해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바오로서원은 도서, 음반 등을 통하여 길 진리 생명이신 스승 예수님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1983년 4월 3일 서울 천호동 서원을 시작, 인터넷 서원을 거쳐 2018.3.17. 북카페 레벤에 이르렀습니다. 현재 전국 8개 서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초, TV가 많이 보급되지 않았기에 신자들에게 직접 찾아가 영화를 상영하고 신앙강좌를 하였습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캠프를 진행하고 cpbc에 출연하여 방송을 통해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YouTube 채널에서 북토크, 성경과 신앙 강좌, 오늘의 묵상, 오디오북, 창작 음악, 애니메이션 등을 제공합니다.
매년 가톨릭영화제(CaFF)를 통하여 복음 정신을 담은 영화들을 상영하고 있습니다.
성바오로출판사는 1962년 옵셋기계 Kikuzemban과 조판 사식기로 인쇄소를 시작하였습니다. 1964.1.30. 첫 교리서『어떻게 교리를 배워야 하나』을 출간했습니다. 노틀담 수녀회에서 엮은 예비신자 교리서 『사랑의 공동체』, 첫영성체 교리서 『사랑의 공동체 하나되어요』를 출간했습니다. 성서 사도직의 결실로 길 진리 생명 해설 성경(지혜문학편, 신약편)을 출판하였습니다. 대중들과 함께 복음 정신을 나누고자 임프린트 ‘레벤북스’를 설립하였습니다. 그리고 첫 책으로 황인수, 『쓸쓸한 밤의 다정한 안부』를 냈습니다.
노기남 바오로 주교님의 성바오로수도회 초청(주교님과 추천서).
10.27. 한국 성바오로수도회 건립 요청(창립자 알베리오네의 요청과 교황 요한 23세 승인).
12.2. 바오로 마르첼리노(Paolo Marcellino) 신부 입국(가운데)
바오로 마르첼리노 신부는 1936년부터 한국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가 일본에 있을 때, 로마에서 성바오로수도회를 알게 된 두 명의 한국인 사제가 그를 방문하여 한국에 진출할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이후 여러 방안을 시도한 끝에 바오로 마르첼리노 신부는 1961년에 이르러 선교사로 한국 땅을 밟게 되었다.
경제개발계획이 추진됨에 따라 <한강의 기적>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우리 경제는 고도성장을 이룩했으나, 경제의 대외의존이 심화되고 빈부격차 등 사회모순이 격화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이 분위기 속에서 수도회는 라디오 방송국 설립 문제(1962), 잠정적 철수(1970) 등 어려움을 겪는다.
한국 성바오로수도회 설립. 바오로 마르첼리노(Paolo Marcellino) 신부 초대원장으로 취임
6.25. 성바오로출판사, 대조사大潮社 출판사 등록. 인쇄소 운영 시작(~1984.4.). 바오로 마르첼리노 신부는 ‘성바오로출판사’ 외에 ‘대조사’라는 출판사를 설립하여 일반 문학작품, 가정문고 등을 출간하였다.
12.16. 서울 수도원 공동체와 인쇄소 건물 축성.
공동체 입주 및 인쇄 기계 설치(제단기, 활판 인쇄기, 조판 작업).
2.7. 한국어 바오로 가족 기도서 인쇄.
3.13~15. 창립자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 한국 방문(첫째 줄 가운데).
1982년 1월 성화를 인쇄하고 감수중인 두 수사.
성바오로수도회 첫 교리서『어떻게 교리를 배워야 하나』출간.
10.30. 이탈리아 선교사 마리오 수사 한국 입국.
선교사 마리오 메체네로 수사는 한국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고 2011.7.3. 이탈리아로 귀국하였다.
보급소 완공(1965.5.17.~).
8.24 첫 성인전 출판. 보급 사업이 정상궤도에 오름.
8.30. 영화 사도직 구상. (당시 영화 자료 화면 The window[1949])
1981년 영화 상영 사도직을 준비 중인 두 수사.
첫 방인 수도자 이영춘 베르나르도 수사 종신서원. 한국 성바오로수도회 이영춘 수사가 창립 16년 만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종신 서원을 하였다. (알베리오네와 벨라도 수사[1970.12.12.], 첫 서원 사진[1972.9.8.])
첫 한국인 사제 유광수(야고보) 신부 서품.
첫 번째 성바오로 서원 개원(서울 천호동).
수도원 본관 건물 축성식(서울 미아리).주한 교황대사 프란치스코 몬테리시 주교를 초청해 성대한 축성식을 가졌다.
첫 한국인 이영춘 베르나르도 수사 원장 임명(8-9대 원장).
음반 사도직 한국 성바오로 미디어 시작. 다락방 스튜디오 축성식
월간 어린이 만화 잡지 ‘내친구들’ 창간.
초대 편집장 김길수 분도 수사
창간호
11. 29. 심재영(예로니모) 수사 한국인 첫 선교사로 나이지리아 파견.
※ 2020년 YouTube 채널 ‘말씀뚝딱’ 개설
제1회 ‘내친구들’ 여름 캠프 주최. 경기도 마석 캠프장에서 1,000여 명의 어린이들이 참석했다.
2001.8.2~6. 제2회 내친구들 여름 캠프.
‘성바오로 북클럽’ 통신판매 업무 개시.
6월 30일
성바오로 선교네트, 컴퓨터 통신을 통해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
말씀학교 개교.
인터넷 서원 개설. http://paolo.kr/
성바오로출판사가 발간한 책뿐만 아니라 가톨릭의 정보와 모든 매체를 취급하는 쇼핑몰, 정보포털 사이트.
제주 분원 설립.
성바오로수도회 한국 진출 50주년.
YouTube 채널 “성바오로수도회” 개설. 어린이 복음 애니메이션 제공.
제1회 가톨릭 영화제, 집행위원장 성바오로수도회 조용준 니콜라오 수사, 기자회견.
김용석(자선도마) 신부 선교사로 볼리비아 파견.
논현동 분원 설립 분원 경당, 베란다.
6.30 대구 분원 설립 대구 분원 성모상, 축성식, 기념 사진.
WHO 코로나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 선포.
3.11. 사상 세 번째로 팬데믹 선포.
7.28. 반그리스도교적, 반 성직자적 사고방식이 팽배하여 사회가 무척 혼란스러웠고 사회주의, 물질주의와 계급투쟁이 확산되어가고 있었다. 교회 안에도 극단적인 보수파와 극단적인 자유주의파가 대립하고 있었다. 그릇된 사고와 삶의 방식을 퍼뜨리는 출판물이 범람할 뿐만 아니라 영화와 라디오도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 자유사상가들의 사상과 운동방침, 정책 선전에 이용되고 있었다.
교황 레오 13세는 여러 회칙을 반포해 진정한 그리스도교적인 민주주의를 강조하면서 서로 간의 대화, 상호 존중, 협력을 진전해 나가도록 권고하였다.
이탈리아 알바 ‘작은 노동자 인쇄기술학교’로 역사적인 첫 걸음 시작.(알베리오네 신부님[왼쪽]과 학생들).
“소죄 한 번을 범하는 것보다 이런 재난을 당하는 것이 더 낫다.”
알베리오네는 하느님의 사랑을 거스른다거나 불신하는 일 없이 하느님의 성실하심을 믿고 온전히 의탁했다.(약속 어음 내용)
저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겠습니다.
알베리오네 신부. 자카르도 디모테오 신부의 서명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 성부 – 성령
‘작은 노동자 인쇄기술학교’를 ‘성바오로수도회’로 개칭.
설립자 알베리오네 신부와 13 명의 학생들은 사적 종신서원을 발하였다.(알바 수도원 축성, 알베리오네와 13명 회원의 종신서원)
설립자 알베리오네가 꿈에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당시 선고받은 불치병 폐결핵에서 기적적으로 회복된다. 이 꿈을 꾼 뒤 수도회의 특별한 사명이 하느님 뜻임을 깨닫고 설립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두려워 말라. 나 너희와 함께 있노라. 나 여기서 비추리라. 너희 죄를 뉘우치라” (image:하느님 말씀을 적은 원고)
알베리오네 신부는 쟈카르도 신부(성바오로수도회 첫 번째 사제)를 로마에 파견하여 분원을 설립하였다.
교구차원의 수도회로 승격.
성 바오로 대성당 봉헌. (외부, 내부)
2020년 성바오로수도회는 현재 37개국에 진출해 있다.
나중에 성바오로 영화사(Sanpaolo film)로 바뀜.
성 바오로 라디오 방송시작.
교황청립 수도회로 최종 승인을 받음.
사도의 모후 성전 마리아께 봉헌. 제2차 세계대전 때 바오로인 가운데 한 사람도 희생당하지 않았다. “만약 성모님께서 이 전쟁 중에 우리 모두를 보호해 주신다면 우리는 바로 이 장소에 그분에게 바치는 대성당을 지을 것입니다.” (건축 현장, 완공된 성전과 알베리오네)
제1차 총회 : 창립자 신부님이 총장으로 선출됨.(총장이 된 알베리오네 신부님께 친구하는 바오로 마르첼리노 신부, 총회 후 사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사회매체에 관한 <놀라운 기술> 교령 인준.
1969.6.28. 바오로6세 교황님 특별 알현
“당신 자녀들과 함께 오늘, 아마 그 동안 한 번도 표현하지 못한 애정을 드리면서 이미 시작한 활동을 담대하게 지속한다는 약속을 받고자 합니다.”
Pro Ecclesia et Pontifice 훈장 수여: 교황은 교회 안에서 전 생애를 바쳐 투신한 사회 커뮤니케이션수단 사도직의 공로를 인정했다.
(바오로 6세와 알베리오네 신부님, 훈장, 바오로6세 교황님과 바오로가족들)
복자 야고보 알베리오네 시복
한국 성바오로 수도회 설립 50주년.
창립 100주년
알베리오네 신부는 당대의 사람들에게 크게 영향을 주었던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 및 출판물 즉, ‘사회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이용하여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다. 그는 주위 사람들의 많은 오해와 비판, 세계 대전으로 겪는 위험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느님의 영광과 복음선포를 위해서 그 수단들을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