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뭐든지 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예 1
우유빛 봄이 가가워 오고 있습니다..... 좋으신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며.... 오늘부터는 본인의 성소 이야기를 올려 드리겠습니다.
1991년 3월 첫서원을 하기 전에 다솜지에 실렸던 것을 다시 올려드리고 있기에 간혹 오타가 있을 것입니다..... 이해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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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한국 천주교회의 200주년 기념 행사의 열기가 조금은 누그러지고, 들판에는 오곡백과가 추수를 기다리며, 하늘에는 그 어느 때 보다도 높이높이 푸른 물감이 곱게 드리워진 9월의 마지막 주일, 대구 근교의 성당에서는 아름다운 성가가 울려 퍼지고 8명의 예비 신자가 새 옷으로 갈아입는 예식이 거행되었다. 이윽고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이 안드래아에게 세례를 줍니다.' 라는 주례 사제의 목소리와 함께 한 모금의 정화수가 이마에 흘러내리고 그리스도의 인호가 새겨짐으로서 하느님의 자녀인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이다.
늘 구경만 해 오던 영성체를 하는 순간 도 한번 가슴은 뛰었고 뭉클해졌다. 그리고 감사의 기도..., 얼마나 기다리고 목말라했던가? 벼대(?)가 굵은 지반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무신론자 였던 내 자신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므로서 삶은 변화되기 시작하였고, 하루 하루의 생활은 하느님의 자녀요 한국 천주교회의 일원이라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을 무렵, 그리스도께서는 다른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다. 신자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견진을 받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어린 아이가 아닌 어른으로서 교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이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영세 동기들과 지고 수녀님의 안내로 대구 근교에 있는 사회복지 기관을 방문하게 되었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동안 주위를 한번 둘러보는데, 뜻밖의 질문이 들려왔다. "안드래아, 이런 곳에서 살고 싶지 않아?" "예, 살고 싶습니다." 수녀님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아주 또렷한 목소리로 자연스럽게 대답을 하였던 것이다.
이곳저곳을 방문하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고, 또한 처음으로 맞이하는 성탄시기를 기쁘고 보람 있게 준비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흘러갈수록 자신이 무언가에 자꾸만 이끌려가고 있다는 생각이 스쳤고, 그대마다 수녀님께서 하신 질문이 자주 떠오르긴 하였지만, 별 마음의 동요없이 지내면서 한가지 다짐을 한 것은, 아무리 바빠도 아침 저녁기도는 빠지지 않고 실천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다짐한 것이 실천이 되었고 나도 모르게 생활화 되어갔다.
집안에서 가톨릭 세례를 받은 사람은 혼자였기에 성호를 그을때마다 '그거 긋지 않으면 안 되는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그래도 출근 전에는 구석에 모셔진 십자가를 보며 "예수님,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하고, 퇴근시에는 먼저 성당으로 달려가 미사 참례를 하고 오면 "참으로 극성이구나."라는 핀잔을 가족들로부터 듣기 일쑤였다. 그러나 하루 이틀 지나면서 주위로부터 들려 오는 것들은 면역이 되어갔고, 성당활동 또한 오히려 불이 더 타올랐다. '예수, 마리아'가 아예 나의 동반자라고 가슴 깊이 느낄 무렵, 이웃을 위해 봉사의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차오르기 시작하여, 마음으로나마 결심을 굳히고 조용히 어머니께 고백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