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뭐든지 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예 3
+. 찬미 예수님~~~~~
동안 잘 지내셨나이까?
2월 수도회 총회 후 여러가지 소임으로 인하여 많이 바뻤거든요..... 이제야 성소 이야기를 올려드리게 되어 죄송하게 생각하며..... 여러분 모두를 위해 기도합니다.
스승 예수님 은총 안에서 사순시기 잘 지내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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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초,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입대 전 근무했던 먼 친척이 운영하던 회사에 다시 나가던 어느 날, 수도자에 관한 자료도 얻고 책도 구입할 겸 성바오로서원을 찾아갔다. 책을 한 권 구입한 뒤, 수녀님께 수도회 주소를 좀 알려 주실 수 있느냐고 하니까, "왜 그러세요." 라고 물으셨다. "아니 그냥 뭣 좀 알아보려고 그럽니다." 하면서 머뭇거리니까 수녀님은 나의 행동이 수상쩍었던지 자꾸만 쳐다보시며 혹시 수도성소에 관심이 있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비밀이 탄로난 사람처럼 얼굴을 붉히면서 그렇다고 하며 문을 나서려는데, 수도성소에 관심 있으면 한번 오라고 하시면서 성소자 팜플렛 한 장을 주셨다. 별로 관심 없이 주머니에 넣고 인사를 한 뒤,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팜플렛을 보았는데 "성바오로 수도회"에 대해서 소개가 되어 있었다. 이미 마음은 다른 데에 있었기에 관심 없이 보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아무도 모르게 수도회를 한번 방문을 하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띄웠다. 며칠 후 소식은 어김없이 와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어머니께서 이를 아시고는 "도대체 왜 그러느냐." 하시며 화를 내셨다. 이왕 탄로 난 이상 어쩔 수가 없어 사실 이야기를 드렸더니, 어머니의 대답은 한마디로 "안 된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3월 중순경, 토요일 근무를 마치고 난생 처음으로 혼자 서울 나들이를 하고자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어머님께는 어디 좀 다녀온다고 하였기에 마음은 몹시 가벼웠고 기뻤다.
일단 용산역에 도착했는데, 날이 밝기 전이라 지하철은 운행되지 않았고 사람들은 어디로 향하는지 바쁘게 오가곤 하였다.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지금까지는 쉽게 왔지만, 아직 어둠이 걷히기 전이고, 서울에 처음으로 왔으니 어디로 가야 될지 몰라 무작정 걸으면서 성당을 찾아보았다. 이왕이면 새벽미사에 참례하고서 찾아볼 생각이었다. 두리번거리며 높다란 담 밑을 걷고 있는데 몇몇 사람이 아침운동을 하는지 가까이 오고 있었다. 인사를 한 뒤 성당이 어디쯤 있느냐고 여쭈어보니 지금 새벽미사 참례를 하러 간다고 하셨다. 얼마나 기뻤는지….
기쁘게 새벽미사에 참례한 후 수도회를 방문하여 면담을 하였는데 원장님께서 언제쯤 올 수 있느냐고 하시며 입회를 허락하셨다.
예상외로 너무 쉽게 이루어지는 것 같아 내심 기뻐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자꾸만 의문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진정으로 부르심을 받았는지를.
본당에 도착하여 신부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그곳에서 살 수 있겠느냐?"고 하셨다. 깊이 생각해보고서 결정하겠다고 말씀드린 후, 수녀님께 말씀드렸더니 여러 가지를 말씀해 주시면서 마음의 준비를 잘하라고 하셨다. 집으로 돌아온 후 어머니께 말씀드리자 "어쩌면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일을 저질렀느냐!" 하시며 화난 모습으로 반대를 하셨고, 형들도 "집안 망신을 시키려느냐, 이제부터는 너는 우리 가족이 아니라 남이다!" 라고 강하게 반대를 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갖가지 모습으로 다가오는 압력, 안 밖으로 오는 유혹이 괴로웠고 힘이 들었지만 그때마다 쓰러질 수가 없었고, 그분에 대한 사랑 또한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성당에는 역대 본당 신부님께서 쓰셨던 구석방이 있음을 알고 신부님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더니 쾌히 승락하셨다. 오랫동안 교리교사들이 도서실 겸 회합실로 쓰던 곳이라 조금만 손질을 하면 혼자 쓰기에는 훌륭한 곳이었다. 그 날로 어머니께 말씀드리고서 이부자리만 달랑 들고서 가출 아닌 가출을 하면서도 어머니께 대한 사랑 때문인지 가슴이 무척 아팠으나, 기분은 날아갈 것만 같았다. 신부님, 수녀님들께서도 이미 나의 마음을 아셨는지 여러 가지로 도움과 용기를 주셨다. 이렇게 해서 근 1년 간의 본당에서의 생활은 시작되었다. 매일 아침에는 조그마한 성당 마당이지만 그분의 안배로 빗자루로 쓸 정도의 쓰레기는 밤사이 준비가 되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명이 밝아오기 전에 일어나서 먼저 예수 마리아께 아침 문안을 드린 후 마당을 쓸때면 언제나 입은 종알 거리고 있었다. "이렇게 쓰레기를 쓸어내듯이 내 마음 안에 있는 좋지 못한 것들을 당신께서 빗자루 질 좀 해주십시오"라고…. 어니 정도 성당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질 즈음에는 나름대로의 생활이 정리가 되어 갔고, 특히 골방에서의 기도 또한 마음속으로 서서히 들어오고 있었다. 간혹 마음이 무거울 때에는 밤 공기를 마시며 창 밖으로 새어 나오는 성체등을 바라보거나 성모상 앞에서 혹은 마당을 오가며 머리를 식히곤 하였다. 또한 가끔 찾아오는 위문객(?) 과의 대화는 성소에 대한 확신을 갖게끔 해 주었는데 지금쯤 그는 어디서 무얼 하는지…. 이렇게 생활하다 보니까 가끔 본당 어른들께서 "신학교 가기 위해 공부를 하느냐?" "수도원에 가려고 하느냐?" "왜 직장은 그만두고 성당에 묻혀 사느냐?" 고 물어올 때면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그냥 미소로만 답을 대신하기도 하고 머리를 긁적거리곤 하였다. 그런데 속사정을 아시는 몇몇 분은 직, 간접으로 기도와 사랑으로써 동참을 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