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눈이 온다.
새벽부터 내린 눈이 사위가 다 어둑어둑해진 저녁 때까지
쉬지 않고 내리고 있다. 다들 어린아이같이 되어서 아침을
먹고서는 눈싸움을 한다, 눈사람을 만든다 하고 법석을 피웠다.
강아지도 덩달아 겅중거린다. 태어나서 처음 겨울을 맞는
녀석에게는 눈이 신기하기도 할 테지.
이 강아지는 검정이 많이 섞인 황토색 털을 가졌는데
이빨이 계속 자라서 그러는지 자꾸 무얼 깨무는 버릇이 있다.
수도원 마당에서 혼자 놀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놀아달라고
달려가는 이 강아지가 어제 오후에는 신부님을 만났다.
쌀쌀한 날씨에 그렇게 돌아다니는 녀석이 안스러웠던 걸까.
식당으로 향하는 내 귓가에 신부님이 강아지에게 하는
말이 들렸다.
"너는 발이 안 시렵니?"
2.
점심을 먹고 동산에 올랐다.
발이 푹푹 빠지는 길을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어기적어기적 오르는데
솔가지 위에 쌓인 눈이 제 무게를 못 이겨 머리 위에, 어깨 위에
쏟아진다.
"어, 차거."
하느님은 가끔씩 너무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을 이렇게 하얗게
만들어놓고 좋아하시는 것일까. 세상은 온통 하얀 눈에 덮여
조용하고 가끔씩 까치만 가지 위에서 날아다닌다.
다른 철에 이 동산을 제 집으로 삼아 살던 온갖 것들은 지금은
다 땅 아래서 겨울잠을 자거나 유충 껍데기 안에 숨어 있겠지.
나도 한 백 년 흰 눈 아래서 포근하게 겨울잠이라도 자고 싶다.
한 백 년쯤 후 눈이 녹고 봄이 오면 아지랭이 오르는 언덕에서
새로 나는 풀잎들같이 기지개 켜며 일어나기도 하려고....
꿈이 너무 한뎃길로 흐른걸까,
가지 위 눈이 한 무더기 우수수 떨어진다.
<2001. 1.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