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뭐든지 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 안에서의 그리스도(1)
우리는 공부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께로 향해야 하고, 우리의 신심과
우리의 기도도, 또 우리의 사도직도 모두 다 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
께로 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생활안에 이 세마디의 내용을 적용시키기 위해서 예수께서 당신
자신에 대해서 선언하신 이 세 마디 말씀을 깊이 연구해 보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말마디의 첫째 뜻, 가장 깊은 뜻은 빠스카의 신비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당신 자신에 대한 그리스도의 이 선언은 최후 만찬 석상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며, 당신의 죽으심과 당신의 부활을 내려다보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기 때문이다.
창립자께서는 그리스도께서 3가지 일을 하셨는데, 먼저 행동하심으로써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 주시고 이것은 곧 우리에게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둘째로 당신이
보여주신 그 모습을 설명해 주신다. 이것이 바로 진리이신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다음에는 우리에게 은총을 내려 주시는데 우리도 깨달은 대로 행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어, 이것이 바로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위의 설명과 같이 예수께서는 요한 복음 둘째 부분(13장~17장)에서 이 세 가지 모습
으로 명백히 보여 주시고 있다. 13장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분의 길이다. 14장 부터 16장 까지는 그 사건을
설명해 주신다. 즉 우리에게 왜 그렇게 하셨는지를 설명해 주심으로써 진리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다. 17장에서는 우리를 위해서 열심히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신다. 즉 우리에게 은총을 내려 주셔서 우리도 그런길을 걸어서 그 아버지의
생명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고 계시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즉 내가 죽고 내가 부활함
으로써 죽음과 부활의 이 빠스카 신비로써 성부께로 나아간다' 라는 말씀으로 결국
죽음을 통하여 부활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음을 설명하고 계신다.
성서는 어둠 속에, 죽음의 그늘진 응달에 앉아 있는 인간을, 인간의 참 모습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이러한 인간의 어려움과 불가능의 상태에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고 그 해결의 길이 바로 죽음을 통해서 영광스러운 부활에로
가는 길인 것이다. 이렇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야 말로 그리스도인
으로서의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 빠스카의 역동적인 효과를 제시해 주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이 말씀의 둘째 뜻은 바로 '자유, 해방' 이다. 즉 우리는
아버지의 자녀가 되었고 그러므로써 지금까지의 종의 신세에 있다가 이제 아버지의
귀여운 아버지의 자녀가 됨므로써, 우리는 이미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것이다.
현대 인간이 그리워하는 이 해방, 이 자유를 얻으려는 노력도 결국 그리스도적
생활을 통해서만 가능하게 되고 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므로 그분을
통해서만이 이 인간의 소망은 제대로 해결되고 성취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창립자께서는 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에 담긴 세 가지 의미를 한데 묶어
서 우리의 지성과 감정, 의지가 총동원되어서 길이요,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때에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소망을 성취한다고 보셨다. 즉 그리스도는
걷고자 하는 우리, 자라고자 하는 우리, 무엇을 결정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길로서
나타나 주시고, 자기의 생활을 이상적으로 영위해 가고자 하는 우리의 머리를
비추어 주시는 진리로서 나타나시며, 또한 우리의 생명이 되셔서 우리의 전부를
당신의 뜻과 일치시키고, 생명으로서 우리와 교류되고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세 자기 요소를 한데 묶어서 생각하는 것은 우리 인간이 분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즉, 아버지와 인간과의 관계가, 인간의 전체적인 감정과 지성과 물리적 능력이
합해서 맺어져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도 전인간적인
관께를 맺어야 할 것이지, 감정적이거나 지성적이거나 분열된 모습으로 인간 관계가
맺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모습으로 제시하고 이 모습은 하나로 뭉쳐져서 전인적인 우리의 내적 풍요성을
나타내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