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복음 6장 1절-6절, 16절-18절
'모' 수사님의 초대로 영화를 보았습니다.
제목은 Gladiator(검투사라고 하더군요, spelling이 맞나 모르겠네요.)
로마제국의 막시무스라는 한 유능한 장군이 이러저러한 사연으로 검투사 노예
로 팔려가면서 펼쳐지는 괜찮은 영화였습니다.
막시무스 장군의 리더쉽은 카리스마적이었습니다.
많은 군인들이 그를 따랐고 많은 노예 검투사들이 그를 존경했습니다.
그를 위해서라면 죽는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위대하게 만들었을까요?
막시무스는 병사들에게 무척 다정다감했고 병사들과 기쁨과 고통을 같이나누
었습니다.
전쟁, 충성보다는 병사들의 안위('허준' 버전)를 먼저 생각했지요.
영화 속에서는 볼 수 없었지만 막시무스가 병사들을 위해 뒤에서 얼마나 많
은 관심과 노력과 기도를 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막시무스가 받는 존경심과 위대함은 보이지 않는곳에서도 노력한 보답이라고
생각합니다.(좀 억지인가요?^^;)
예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노력을 하느님은 보시고 상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뜻을 듣기는 합니다. 인정받기 위해서 유별나게 행동하는
사람을 보면 그리 달갑게 보는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막상 자신의 이익과 출세, 권력을 위해서라면 그렇지가 않은것 같습니
다. 어떻게든 자신이 선행을 한다고 알려야 하고 남들을 위해 많은 돈을 부담
한다는 것을 보여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예수님의 진정한 의미가 흐려지는 느
낌을 감출 수는 없는것 같습니다.
바리사이들이 그 뜻은 좋지만 행동이 나빴던 것처럼 요즘의 사람들도 그렇게
변해가는것 같아요.
물론 모든것을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들을 위해 평생을 봉사하고도 소리없이
사라져가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 분들은 세상의 보답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도 입가에는 항상 미소
를 머금고 있지요.
육체적으로 물질적으로 좀 힘들고 고달프지만 마음이 즐겁고 보람되다면 그보
다 더 큰 행복은 없을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본받는 사회가 되었으면합니다.
돈 때문에 먹고 먹히는 상막한 사회가 아니라 비록 조금 가지고 있지만 기쁘
게 나눌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사회말입니다.
그것이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