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경우에 어린이의 특징이라면
자기가 일해서 밥을 벌어 먹지 않는다는 것이 아닐까요?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이나
노동의 가치 또는 무노동 무밥이라는 살벌한 원칙 등을
어린 아이에게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어린이는 엄마가 주는 밥을 먹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어린이와 같이
얻어 먹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께서 무상으로 선사하시는 것이지
우리가 대가를 지불하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교적 덕행을 이야기할 때
그것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으로
제시된다면 좀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사도 바오로께서도 이런 점을 걱정하셨는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저 주시는 은총'이란 말을
사용하십니다.
사도 바오로의 관점에서 볼 때 선행하는 것은 은총입니다.
인간의 행위에 대해서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서
죄에서 벗어난 사람이 어떻게 다시 죄를 짓겠습니까'라고
말씀하십니다. 행위는 존재에 따른다는 거지요.
구원받은 사람답게 성령의 인도에 순응하며 사는 삶을
요청하십니다. 은총으로 새 인간이 되는 것이지
새 인간이 되어야 은총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사람은 살다보면 거저 주시는 은총도
발로 차버리는 해괴한 행동도 하고
했던 실수도 거듭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은총 안에서 항구히 살 수 있도록
여러가지 수덕 방법이 가르쳐지고
일탈에 대한 경고도 주어지겠지만
그렇다고 처음의 순서가 바뀌는 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간혹 성찰과 통회의 정도를 넘어
스스로를 가혹하게 질책하고 침울한 분위기에 빠지는
자신을 발견할 때,
하느님 나라를 선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일정한 내 행위를 주고 사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봅니다.
내가 죄를 지어 하느님의 사랑을 저버린데 대한 아픔인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포인트를 쌓지 못한데 대한
아픔인지 잘 모르겠을 때가 있습니다.
과연 복음이 나에게 기쁨을 주는지 아니면
죄의식과 억압을 주는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내가 어린이처럼 하느님 나라를 찾는지
어른처럼 하느님 나라를 사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을 때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