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매혹적인 책이 있다.
그 책은 너무나 매혹적이어서 일단 펼쳐 들면
어떻게 될지 두려웠다.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과 노인 같은 두려움으로 나는 머뭇거린다.
그 책은 삶이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호기심을 이끌어내지만
알지 못하는 까닭에 두렵다.
생명을 가진 존재는 어떤 사물에서든지 본능적으로
죽음을 알아차리므로 우리는 두려워하는 것일 게다.
삶에 대한 정열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모든 것은 신비롭게 시작되지만
그 끝은 앙상하고 메마른 잔해로 남는다.
그러나 그것이 앙상하고 메마른 어떤 것이 되는 데에는
반드시 나의 삶이, 나의 존재가 합해져야 한다.
그것은 선택이고 용기이고 투신이다.
우리는 삶의 겉장을 넘겨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목적지를 정하고 길을 나서지만
정작 우리의 여행은 미지의 것을 향하는 것 같다.
길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에 열려 있는 여행.
실상 목적지가 아니라 길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중요하다.
우리는 그것들로부터 많은 것을 얻어 돌아오는 것이다.
여 행
취리히는 무엇보다 깊은 도시인 줄 아시나요?
경이와 성스러움만을 언제나 내용으로 가진?
정거장 앞길들과 Rue, Boulvard, Lido, Laan,
5번가에서도 공허는 닥쳐오는 법.
아! 여행이란 헛수고!
너무 늦게야 우리는 깨닫는다.
가능한 것은 머무를 것,
제한된 자아를 고요히 유지할 것뿐이라는 것을....
고트프리드 벤
<2001. 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