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묵상]
바벨탑의 비밀 통로
연중 제 6주간 금요일 독서(창세 11, 1-9)
점보 비행기를 타고 밤새워 날아가던 성지순례의 길에서 나는 감탄에 감탄을
거듭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공중을 날아가면서도 몇 끼니를 먹고 자고 싸고.....
"독수리 날개에 태워"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내셨다는 주님의 말씀이 이제는
인간이 만든 거대한 독수리의 날개를 타고 떠난 출애굽이 되었다는 감회에 젖
어있었던 것이다.
인간이 만든 문명의 산물이 어찌나 위대해 보였던지....
주님도 위대하지만 인간도 위대하다!
헌데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었다.
32년만의 폭설이라는 눈의 폭격을 맞았기 때문이다.
도시는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했고, 사람들은 발을 구르며 귀가 길을 서둘러본
다.
어쩔 수 없는 볼일이 있어 길을 나선 사람들은 마음대로 제어할 수 없는 빙
판 길에서 곤욕을 치렀다.
쏟아지는 눈의 폭격 속에서 길에는 접촉사고가 연발했고, 도처에서 미끄러지
고 헛바퀴 도는 차량들의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다.
뱃길, 항공길, 철길, 고속도로가 모두 마비가 되어버린 사태에 인간은 속수무
책이었다.
그렇게나 가볍고 그렇게나 순식간에 녹아버리는 눈송이 때문에 말이다.
돌이나 흙 그런 자연의 산물이 아닌, 인간의 문명의 산물인 벽돌과 역청으로
만든 바벨의 탑.
인간의 문명과 문화로 이루려고 하는 하늘에 닿는 탑쌓기는 너무나 허무하게
도 무너져버렸다.
사람들이 서로의 말을 못 알아듣게 되는 간단한 일에서 시작되어버렸다.
人間!
인간은 개체로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 다시 확인된다.
사람과 사람의 가 실은 인간이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가 서로 소통되지 않을 때 인간은 존립할 수도, 문명을 창
출할 수도 없다.
눈에 갇혀 꼼짝 못하던 사람들이 서둘러 자기의 집 앞을 치우러 나온다.
평소엔 생경하던 이웃들이 비로소 눈을 마주치고 웃음을 되찾으며 함께 공동
작업을 해나간다.
자진해서 나와서 헛바퀴 돌고있는 차량의 뒤를 밀어주고, 튀기는 진창 세례
를 받아가면서도 흙을 뿌려주고, 삽질을 해주는 광경이 보기에 정겹다.
우리의 발걸음을 더디게 하는 싸늘한 빙판, 그 장애물이 어느새 훈훈한 인정
의 베품 場으로 녹아감을 느끼면서
서로의 간격이 따듯한 사랑으로 채워질 때, 세상의 어떤 어려움도 십자가도
사라진다는 것을 배웠던 하루였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
다."
오늘 복음(마르 8,24-9,1)의 말씀에서는 두 가지의 목숨이 있음을 알려준다.
大我와 小我!
큰 목숨과 작은 목숨.
온갖 어려움과 고통을 상징하는 인류 공동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순간 순간
의 小我를 희생할 때만이 우리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 大我를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이다.
십자가의 또 다른 상징인 사랑의 힘만이 아무리 어려운 장애물도 쉽사리 제거
할 수 있음을, 그리고 벌어졌던 우리의 간격을 좁혀 이 되게 하는
것임을 깨우쳐준다.
바벨은 바빌론의 지구랏트를 연상시키는데.....
바빌론이란 '신의 문'이라는 바빌리라고도 불리운단다.
바벨과 바빌리의 어근이 같다는 것에 착안한 창세기 저자의 언어의 유희.
하늘에 계신 신에게로 통하는 문.
인간이 하늘에 닿으려고 쌓은 탑.
바벨의 비밀의 문은 오히려 하느님이 인간이 되시어 낮은 땅으로 오신, 십자
가의 지하통로로 통하여 있음을 발견한다.
2001.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