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날은 햇볕이 따뜻한 좋은 날씨였다.
점심을 먹고 피정집의 유리문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집앞의 나무를 내다보았다. 의자 앞에 세워진 보면대에 악보가
놓여 있고 햇살이 그 앞까지 와서 나를 건너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따뜻한 행복감에 젖어서 그림 공책을 꺼내 유리문
건너편의 나무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무를 그리다가 함께 그린 내 마음의 편린들....
어릴 적 우리 집엔 무화과 나무가 많았다.
나는 즐겨 무화과 나무에 올라가 놀았다. 나무 줄기에 구멍을
뚫어 흐르는 수액을 먹는 풍뎅이를 잡아다가 실을 매어 장난감
수레를 끌게 하거나 나무꼭대기에 올라가 마구 굴러대며
말타는 놀이도 하며 놀았다. 여름철에 익는 무화과 열매는
얼마나 맛있었던지!
나중에 성서에서 본 예수님의 말씀은 꼭 나를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무화과 나무 아래 서있던 너를 보았다."
겨울이면 집안 어른들과 형들과 같이 산에 가서 나무를 베고
장작을 팼었다. 커다란 소나무를 벨 때 밑둥을 톱질하는 일이
조금씩 내게 맡겨지는 수도 있었는데 그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톱날이 송진에 엉기는 일이 없도록 석유를 칠하지만 그래도
나무 사이에 끼는 일이 많았으므로 톱자루를 잡고 낑낑대고 있으면
보다 못한 형들이 교대해주고 그랬었다.
나중에 큰 소나무가 쓰러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이리저리 기우뚱대던 나무가 한쪽으로 쐐액! 공기를 가르며 넘어진다.
쿵! 그 모습이 너무 인상깊어서 언젠가 소설을 쓰면 꼭 이걸
넣어야지 다짐했었다.
"그는 커다란 나무가 쓰러지듯 천천히 넘어졌다. 그리고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내 첫사랑은 가끔씩 짖궂어지기도 하는 심술장이였다.
어느 봄날 "사랑의 맛이 어떤 건지 알아요?"하더니
새봄에 돋는 라일락 잎을 조근조근 씹으면 사랑의 맛이 난다는
거였다. 그 꾐에 넘어가서 사랑의 맛을 보고야 말았지만
그건 정말 잊을 수 없는 그런 맛이었지....
유리문 건너편의 나무는 끝에 잔 가지가 많은
포플러였나보다.
이렇게 복잡한 것을 그리다보면 어느 순간 성실하지 않게 된다.
보고 그리지 않고 그냥 상상해서 그리는 것.
나뭇가지의 생김에 무슨 규칙이라도 있다면 안 보고
그릴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아니라서 그림은 결국 상상화가 된다.
그것은 무어라고 할까. 이를테면 회피 같은 것.
눈앞의 것으로부터 눈감음 같은 것.
<2001. 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