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묵상]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연중 제 4주간 월요일 복음(마르 5,1-20)
사는 곳: 무덤.
활동 시간: 밤과 낮의 구별이 없이, 잠시도 가만있지 못할 정도로 활동이 왕
성함.
활동 장소: 주로 묘지 주변과 인적이 없는 산
옷차림: 알몸.(루가 참조)
말씨: 괴성을 지르고 다님.
몸의 특징: 온 몸이 찢겨져 있음.
이름: 모름.
별명: 군대
혹시 이런 사람 못 보셨나요?
그렇다면 다시 자세히 말씀드릴테니 잘 보시고 이런 사람 보시면 연락해 주십
시요.
사는 곳은 생기(生氣)도 활기(活氣)도 온기(溫氣)도 없는 곳.
무엇엔가 정신이 팔려 밤이고 낮이고 구별 못하고 싸돌아다니는 사람.
한시도 마음 편하게 안정하지 못하고 불안하게 서성대며 살아가는 사람.
그가 주로 마음을 뺏기는 것은 죽음의 냄새가 피어나는 것들.
그가 걸친 것은 부끄러움도 모르고 수치도 모르는 안면 몰수의 행색들.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아름답고 건전한 말이 아닌 허풍들, 거짓말들.
그가 하는 행위들은 결국 자신을 파멸로 몰고 가는 자학적인 행적들.
진정한 자신의 신원을 망각하고 수천 수만 가지로 갈가리 분열되어 자아(自
我)를 상실한 사람.
자. 이젠 떠오르는 사람이 있나요?
이중 몇 가지쯤 자신에게 해당되는 사항이 있나요?
바로 이런 사람을 악령 들린 사람이라고 한다는군요.
이런 사람은 예수를 만나자마자 이런 말을 한다는군요.
"왜 저를 간섭하십니까? 제발 저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예수께서 악령을 보시기만 하면 "그 사람에게서 나오너라."하고 명령하시기
때문이었답니다.
혹시 예수님의 명령을 듣고도 변화하지 않는 나를 두고 하신 말씀은 아닐까
요?
평소의 못된 습관들, 주님이 주신 생명을 거스르고 해치는 행위들, 주님 앞에
서 부끄러운 행동들, 사랑의 온기가 없는 딱딱하고 냉냉한 생각들, 진실되지
않는 말들의 무덤 속에서 그대로 안주하려고 하는 나의 모습은 아닐까요?
예수께서는 이런 사람을 보시고 끊임없이 물으신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처음 주님이 생명을 주어 세상에 보내셨을 때의 신원(身元)을 잊지 말라고 물
으시는 거지요.
이름은 단순히 그를 부르는 호칭이 아니라 그의 인격, 사람됨, 정체성을 나타
내는 것이기도 하거든요.
따라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는 것은 "너는 누구인가?" 하고 물으시는 것입
니다.
누구의 어머니인지, 아버지인지, 딸인지, 아들인지, 신앙인인지, 그리스도 신
자인지, 나 아무개 자신의 진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거짓 자아
를 덧입고 있는 것인지.....
"군대라고 합니다. 수효가 많아서 그렇습니다."
자아 분열의 모습을 가리키는 듯 합니다.
일반명사 "군대"는 고유한 자신의 이름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세상에 자신을 보내신 분이 의도했던 대로의 본연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고유한 이름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갈래 갈래 분열되어 어느 것이 나의 진정한 모습인
지 망각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밤이나 낮이나 허상들을 쫓아다니며 살아가다 보면 나의 속은 거짓 자아로 무
수히 채워져 어느새 망령 "군대"의 졸개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처럼 들
립니다.
예수께서는 그의 안에 거주하던 악령들의 간청을 들어주시어 돼지 떼 속으로
들여보냈지만, 돼지들은 바다 속에 빠져 죽고 말았답니다.
돼지 치던 사람들이 이 말을 전해듣고 예수께 그 지방을 떠나 달라고 간청합
니다.
"그냥 바다에 빠지게 하면 되지. 왜 하필 돼지들을 떼로 죽여 손해를 끼치게
하셨냐?"고 질문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기 돼지도 아니면서 이렇게 아까워하는데 돼지 임자는 얼마나 아까웠을까
요.
그러나 정말 아쉬워 해야할 것은 무엇일까요?
돼지라는 동물은 유다인에게는 부정한 것의 대명사처럼 인식이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더러운 악령이 있어야 할 곳은 바로 부정한 곳-돼지-이
어야 한다는 유다인의 인식이 밑바닥에 깔려있습니다.
또 악령들린 사람이 멀쩡한 정신으로 돌아와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도 자신들
의 경제적 손실에만 정신이 팔려 예수를 떠나보내는 어리석음에 대해서도 경
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또 다른 악령, 즉 재물의 악령, 어리석음의 악령이 들려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정말 아까워 해야할 것은 사람을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주님의 축복을 떠나가게 만드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멀쩡한 정신이 든 사람의 행각을 살펴보면 아까의 상황과는 영 딴판임
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가만히 앉아 있게 된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가만히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멀쩡한 정신이 든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기도하지 않고 종일 서성대고 다니는 사람은? ..........
그는 옷을 바로 입고 앉아 있습니다.
주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죄스러움을 느끼고 있다는 말도 되지 않을까요?
멀쩡한 정신이 든 사람은 주님 앞에서 자기의 부족함, 죄스러움을 늘 느끼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주저앉지 않고 자신을 써 달라고 애원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
람입니다.
멀쩡한 정신이 든 사람은 자신이 원하던 청을 거절당하고 다른 할 일이 맡겨
져도 신이 나서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멀쩡한 정신으로 본연의 모습을 잃지 않고 살아가길 원하시는 주님이
십니다.
우리의 마음의 옷고름은 잘 매여져 있는지.
우리의 집은 따스한 사랑의 온기가 있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거처인지.
우리는 주님 안에서 평화로운 안식을 찾고 있는지.
주님 앞에서 늘 죄스러움을 느끼며 겸손되이 기도하는 사람인지.
점검해보아야겠습니다.
2001.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