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복음 1장 29-39절
"이른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께서 일어나
바깥 외딴 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였다."
어떤 책에 대나무 같이 끊는 기도에 대해서 이야기 한 것이 있다.
오래되어 가물가물하지만 '끊는 기도'라는 것에 대해선 생생하다.
대나무는 위로 위로 뻗어간다. 그러나 중간 중간에 세로를 가로지르는
것이 있다. 그 가로지르는 것이 없으면 대나무는 힘을 잃고 넘어가고
말것이다.
우리의 삶과 기도도 마찬가지이다. 위로 뻗는 것이 우리의 삶-생활, 사도직-
이라면 가로지르는 것은 기도이다.
일이 많은 우리 수도회로선 그 일만, 생활만 강조되기가 쉽다.
사도직이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사도직을 더욱 새롭게 해주는 끊임의 자리 즉 기도가
없다면 그것은 더이상 사도직이 아니라 단순히 '일'이 될 것이다.
이른 새벽 아직 캄캄할 때 기도하는 것은
하느님 아버지께로 향하는 데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을 만큼
고요한 시간에 하느님과 친교를 나누겠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사도직을 해나가면서 지향을 두고 하면 그것은 기도가 된다.
그러나 '아직 캄캄할 때'와 같이 나의 영혼을
하느님께로 끌어 올리는 시간이 없다면 결국 그 기도는
점점 힘을 잃어갈 것이다.
나의 근원을 항상 인식하며
주님께만 바람으로써 내 마음이 든든해지기를 청해본다.
지금은 어두운 밤 시간이다. 이 시간에도
나와 우리 형제들은 낮에 끝내지 못한 사도직을 하고 있다.
열씨미, 기쁘게 임할 수 있기를 또한 청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