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1주간 화요일 복음(마르 1, 21-28)
오늘부터 전례적으로 연중 시기가 시작되는 날이다.
전례시기가 또 다시 바뀌고 유약한 나는 이것을 빌미로 작심 일주일도 못가
서 다 흐지부지 된 결심들을 또 다시 세워 일으켜본다.
오늘 말씀은 마르꼬 복음에서 예수님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는 대목이다.
갈릴래아 호수 북서쪽에 위치한 포구 도시, 가파르나움의 회당에서... 안식일
에.....즉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시간과 장소를 택하셨음을 알 수 있다.
당시의 유다인들의 회당에서의 전례는 성서봉독(제1독서-모세오경, 제2독서-
예언서)후에 설교를 하였는데 주로 율법학자들이 설교를 맡아 했으나 평신도
들도 할 수가 있었다하니..
아마 이 때 예수께서 가르치신 것같다.
그런데 예수의 가르침을 듣고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
그의 가르침이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율법학자들과는 달랐다고 하니 그들은 권위가 없었다는 말인가?
유다인의 사회에서 율법학자들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과 지위는 얼마나 대단했
는지 성서 곳곳에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석연치않은 점을 하나 묻어두고 그냥 내려가보자.
그 때 더러운 악령 들린 사람 하나가 큰 소리로 외친다.
당시 사람들에게 "악령들렸다"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성서의 여러곳에서 그런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현대의 의학으로 짐작해보면 간질병, 일시적인 정서 불안증, 정신 분열증, 심
지어 벙어리나 귀머거리들까지도 악령들린 사람들에 속했다.
자신들의 의학 상식에 비추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귀신의 장난으로 해석하
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떻든 악령의 실체가 무엇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의 입에서 나온 말
이 중요하다.
마르꼬 복음사가는 그 숱한 예수의 활동 가운데서 왜 이 대목(구마사화)을 골
라서 맨 첫머리에 놓았을까?
힌트는 악령 들린 사람의 항변 속에 있다.
"나자렛 예수님, 어찌하여 우리를 간섭하시려는 것입니까? 우리를 없애려고
오셨습니까?
나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이십니
다."
복음사가는 예수님을 인간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구현>시키기 위하여 하느님
께서 파견하신 분으로 보았으며 그의 가르침과 활동들은 하느님 나라를 가로
막는 <악마적인 요소들을 제거하는> 행위로 보았다.
악마적인 요소들이란 인간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질병, 고통, 미움, 다툼,
죄....등을 말한다.
그렇다.
예수님의 공생활 전체가 이처럼 인간을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악에서,
죄에서 구해내어 하느님 나라를 실현시키는 작업이라고 볼때, 악령을 축출하
는 행위는 바야흐로 하느님의 나라가 인간의 세상에서 펼쳐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표징>이 되는 것이다.
첫 대목에서부터 예수님이 누구신지 사람들은 몰랐으나 악령은 알아보고 있
다.
산불이 일어날 것을 직감한 산짐승들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끼고 피신한다
고 한다.
예수님의 등장만으로도 악마적인 실체들은 자신의 위험을 가장 먼저 감지했었
나 보다.
예수께서 불안에 떨며 큰소리로 외치는 악령을 꾸짖으시자 악령은 사람에게
발작을 일으켜 놓고 떠나갔다.
한마디의 말씀에 악령이 복종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놀라 "이것은 <권
위있는 새 교훈>이다"하고 수군거렸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말씀에는 즉각 효력을 발생시키는 위력이 있었고 그 때문
에 권위있는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분의 가르침은 말씀으로만이 아니라 행동은 물론 목숨까지, 당신의 전
부를 투신하여 가르치셨기에 율법학자들과는 다른 <권위있는 새 교훈>인 것이
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따르고 싶은 참된 권위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카리스마만 가지고 권위가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셨지만 어느 날 홀연히 사람들 앞에 나타나 공생활
을 시작하신 분이 아니시다.
마르꼬 복음은 예수께서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하시기 전에 어떤 일들을 먼저
하셨는지 아주 짧고 간결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사람들 앞에 서시기 전에 먼저 우리 죄인들과 똑같이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죄
인들과 함께 하실 각오를 행위로 보여주셨다.
광야에서의 시험기간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해서 행사한 특권이 없다는 사실
과 함께, 악마의 유혹에 당당히 승리하심으로써 먼저 당신 자신부터 철저한
준비를 하셨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는 드디어 품고있던 웅대한 계획을 공공연히 선포하
셨다.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으라."
그 기쁜 소식의 전파를 위해 같이 동참해줄 제자들을 부르심으로써 세상 끝
날까지 지속될 당신의 구속 사업의 기틀을 마련하셨다.
이처럼 철저한 준비와 계획 안에서 자기의 전부를 바치는 가르침이었기에 그
분 자신이 진실로 권위있는 교훈이 되신 것이다.
아직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제자들과 사람들을 위한 수업(?)도 차근차근 그
분의 계획 안에서 진행되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악령에게 "입을 다물라"고 명령하신다.
당신의 정체를 공공연히 드러내시기 싫어서도 아니고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시
려고 함은 더더욱 아니다.
당신을 알아보고 고백해야 하는 사람들은 바로 당신의 후계자여야 하기 때문
이다.
제자들은 스승 예수께 직접 <와서 보고> 배우고 따라 함으로써 그분이 누구신
지를 몸으로 배우게 될 것이다.
사방에 <권위적인> 사람들 밑에 깔려 살고 있으면서도 참으로 <권위 있는> 사
람들은 보기가 힘이 든다.
그들의 삶과 그들의 말이 결코 다르지 않은 사람.
철저한 자기 성찰(省察)과 극기(克己)를 통해 자신의 몸가짐부터 바로 세우
는 사람.
세상을 이롭게 할 웅대한 비젼을 가진 사람.
옳은 일을 위해 목숨을 바쳐 이루려 하는 사람.
그것을 남의 위에 서서 하려 하지 않는 사람.
혼자 하지 않고 사람들과 함께 할 줄 아는 사람.
:
바로 예수님과 같은 사람.
저절로 따르고 싶은 이런 권위는 오늘날도 예수의 삶을 따라 살려는 사람들
안에서 저절로 드러나게 되리라.
때로, 교회 안에서 "권위있는"을 "권위적인"으로 잘못 읽어 따라 하는 사람들
이 있는 것같아 보기가 괴롭다.
혹시라도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기를.... 목에 힘을 빼고 자신을 돌아본다.
어느 누구의 이야기는 모두 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