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에 있는 벌레들을 잡으려고 소독약을 뿌렸더니
바퀴벌레들도 많이 죽었지만 곳곳에 죄없는 거미들이 죽어있는 것이
눈에 띈다.
거미는 내게 정다운 생물이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시골집에서는
여름 이맘 때 마당의 평상에 앉아 저녁을 먹고 난 무렵이면
우리집 지붕과 감나무 사이에 있는 거미줄로 커다란 거미가 느릿느릿
나타나곤 했었다. 몸통이 둥글둥글하고 큰 이 거미는 낮 동안에 거미줄에
걸린 가련한 잠자리나 풍뎅이들을 둘러보고 저녁 때 날아드는 나방들을
감시하러 나타나는 모양이었는데 맑은 하늘에 보름달이라도 뜰 양이면
밤하늘의 달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그림을 연출하곤 했었다.
어렸을 적 읽은 그리스 로마 신화 속에는 베를 잘 짜는 아라크네라는
처녀가 제 재주를 믿고서 교만을 부리다가 아테네 여신에 의해서 거미가
되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거미가
아주 기특한 것이라고.... 어떤 종류의 엄마 거미들은 새끼들이 자기를
먹고 자라도록 제 몸을 내어놓는다고 말씀해주셨다.
실제로 산에 가면 풀잎을 구부려 사각상자처럼 만든 거미집이 있는데
그걸 뜯어보면 안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조그만 거미 새끼들이
엄마 거미의 몸을 먹으면서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부모님이 다 그렇지만 특히 어머니는 더 그런 것 같다.
아이를 가져서 열 달 동안 힘들여 품고(?) 다니고 말 그대로
산고를 겪으며 낳고, 기르고, 어른이 된 뒤에도 걱정과 염려를
그치지 않으신다. 나도 수도원에 온 뒤로 집에 가는 일이 적어져서
어쩌다 어머니를 뵙는 정도지만 들리는 소문으로 수도원에 사는
이 변변치 않은 아들을 위해 내 어머니가 항상 기도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제는 어른이 된 이 아들을 위해서....
독일의 문필가 브레히트는 '나의 어머니'라는 시를 남겼다.
그녀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땅에 묻었다.
꽃이 자라고 나비가 그 위를 날아간다....
체중이 가벼운 그녀는 땅을 거의 누르지도 않았다.
그녀가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베르톨트 브레히트(김광규 옮김)
어제는 어머니의 영명축일이었다.
지방에 있느라고 전화 한 통 못해드렸으니 지금이라도 어머니께
마음을 써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모든 것을 내어주고 땅을 거의
누르지도 않을 만큼 가벼워진 브레히트의 어머니는 세상 모든 사람의
어머니, 내 어머니이기도 하시니......
<2000. 1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