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가복음 1장 5절-25절
수도회에서 끝기도 이후, 그리고 피정 때 대침묵을 합니다.
아주 급한 일이 아니라면 절대로 말을 하지 않고 내적, 외적으로 고요를 찾
는 것이지요.
평소에 말이 많고 떠들던 사람은 대침묵이 곤혹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에도 평소에는 할말이 없다가도 침묵때만되면 왜그리도 할 말이 많
이 생기는지...
언어장애를 가지고 계신 분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 수 있을것 같습니
다.
하지만 침묵이라는건 영적인 성장에 큰 도움을 줍니다.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고 정리도 할 수있지요.
침묵 중에 느낄 수 있는 내적인 평안함은 어느 곳에서도 기도할 수 있는 공간
을 만들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침묵은 자신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부족한 면을 알고 하느님께 의
지하므로해서 자신의 믿음을 더욱 고양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즈가리야가 말을 못하게 된것은 하느님의 말씀에 의심을 품었
기 때문입니다.
사제의 직분을 수행하는 사람으로서 하느님을 의심한다는 것은 사제로서의 마
음가짐이 흐트러졌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느님의 입장에서 사제가 마음이 흐트러지면 바로잡아 주시려고 하시겠지요?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즈가리야에게 침묵 속에서 자신을 좀 돌아보고 믿음을
확고히 하라는 의미에서 말을 하지못하게 하셨다고 생각해봅니다.
세례자 요한의 탄생 예고는 일단 두번째 문제이고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우선
이라고 생각합니다.
요한의 탄생도, 예수님의 탄생도,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도 제일 먼저는 하느
님께 대한 믿음이 중요한 것이겠지요.
아무튼 사제로서 하느님을 의심하는 자세를 고쳐주시려는 하느님의 의도는 결
국 성공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들이 아침마다 노래하는 즈가라야 노래가 생겨난 것이구
요.
(오늘 묵상은 조금 이상하죠?
복음적인 내용과는 좀 동떨어진다는 느낌이들긴 하는데...제가 쓰면서도 제
뜻대로 써지지않아서 힘들때가 많아요.)
오늘날 우리들이 보는 성당의 신부님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저는 수도회에 있고 입회 전에 만났던 신부님들은 모두 훌륭하신 분들이었기
에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학자들이나 교회 서적등에서 본당 신부님들에 대한 안좋은 이야기
들을 많이 접합니다.
사제에 대한 한국 사회의 어떤 면 때문에 신부님들이 그렇게 변해가는건 아닌
가하는 생각을 합니다.
정말 그렇게 신부님들이 사회 안에서 세속적으로 변해간다면 즈가리야처럼 벙
어리가 되는 경험을 해야하겠지요.
극히 일부의 모습이 확대되어서 그런 말들이 나오는 것이라고 믿으면서 신부
님들의 새로운 다짐을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