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가복음 1장 26절-38절
예수님의 탄생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하느님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이루어진 것
입니다.
하느님의 생각과 판단은 우리 안간들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예수님을 세상
에 보내시는 방법도 아주 특이했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처녀의 몸을 통해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인간적인 생
각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예수님의 삶은 이렇게 태어날 때부터 이미 메시아라는 것을드러내면서 시작되
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예수님의 삶 역시 평범하지 않습니다.
그 시대의 보편적인 생각들을 완전히 뒤엎어버리는 말씀과 행동들, 교육을 받
지않았음에도 뛰어난 학자들의 말문을 막아버렸던 지식과 언변.
아마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의 탄생부터 지켜보았다면 예수님
을 메시아로 추앙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무튼 예수님께서는 그런 남다른 모습 때문에 돌아가시게 된것이죠.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들이 모두 옳고 바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우리들의 기도 생활에서도 바리사이와 같은 모습을 종종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할 때 일반적으로 일정한 형식을 가지고 합니다.
그런데 가끔 조금 다른 형식을 가지고 기도를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요.
문제는 그렇게 다른 형식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을 사람들은 다르게 보는것이
아니라 이상하게 본다는데 있습니다.
그 사람은 고정되어 있는 기도 형식에서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택한것 뿐이
고,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도 되지않았는데 단지 그 방법이 다르다는 이유만으
로 그런 시선을 갖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은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틀을 벗어난사람을 보면서 자신
이 덜 성스럽고 덜 열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고등교육을 받고 사람들을 가르치는 바라사이들이 예수님을 보면서 불안
감을느낀것처럼 말이죠.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킬 생각은 하지않고 그런 사람들을 욕하기만 한다면 정
말로 더 작아지고 더 볼품없어질거라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본받아서 자신도 하느님께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법
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고정되어있는 기도의 방법이 틀렸다는 말은 아닙니다.
단지 조금 바꾸어가면서 하다보면 새로운 느낌도 들고 기도의 힘도 더욱 커질
것 같다는 말씀이지요.
대림이 시작되었고 교회력으로 새해가 밝았습니다.
그래도 올해는 작년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성장해야 하겠지요.
자신의 모습과 다르다고 해서 틀린것은 아니지요.
자신이 틀릴 수도 있으니까요.
조금 다르게 보이는 모습들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잘못된 점을 발견하면 고쳐나가야 하겠지요.
늘 같은모습, 같은 시각으로는 자신의 결점을 발견할 수없습니다.
조금 다른 모습, 조금 앞서가는 모습에서 발견할 수있지요.
그런 의미에서 좀 튀는 모습들, 특이한 모습들은 자신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아주 특별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럼 우리 주위의 독특한 모습을 가진 사람들이 예수님일 수도 있겠죠?
여기서 말하는 독특함이란 불량스럽거나 혼란스러운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시죠?(어려우시면 개인적으로 질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