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가복음 1장 39절-45절
성모님은 가브리엘 천사에게 응답함으로해서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셨고 또한
우리 인류 모두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어머니라는 단어만으로도 우리는 깊은 편안함을 느낍니다.
가정 안에서도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와 더 있고 싶고 대화하고 싶어지는 것도
그런 편안함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도할 때도 성모님을 통해서 드리는 기도가 더 효과적일 때가 많죠.
오늘 복음에서도 성모님께서는 엘리사벳을 위해서 방문하신것 같습니다.
엘리사벳은 아기를 가진지도 6개월이나 되었고 또 남편인 즈가리야는 말을
할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에 힘들고 심심했을것입니다.
이를 알고 있는 성모님께서는 그런 엘리사벳을 위해서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오셨습니다.
인류의 어미니로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성모님은 그런 어머니의 역할을 충실히 하십니다.
인류가 죄의 구런텅이에 빠져있을 때 성모님은 직접 발현하셔서 인류의 회개
를 바라셨습니다.
또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과 소외된 이들에게도 사랑과 희망을 심어주셨습니
다.
전쟁이나 천재지변 속에서도 성모님은 같이하셨습니다.
물론 성모님께서 직접 하신것은 아닙니다.
생각해보면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 곁에, 소외당한 사람 곁에, 전쟁과 천재
지변이 발생한 곳에... 모든 곳에 성모님의 뜻을 이어받아 봉사하시는 분들
이 계셨습니다.
그분들은 자신의 몸은 돌보지 않고 오직 타인을 위해서만 일하셨지요.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런 분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분주하게 움
직이고 계십니다.
성모님의 뜻을 이어받아서 이같이 실천하시는 분들이 바로 성모님이십니다.
가까운 우리 주변에서도 성모님의 모습은 어렵지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거리를 깨끗하게 청소하시는 분들, 우유, 신문 배달하시는 분들, 경찰, 군
인... 모두가 자신의 이익보다는 타인의 편안함과 안전을 더 생각면서 일하
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의 노고와 열의를 우리 모두가 알고 깊이 감사드리고 격려할 수 있어
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자신도 성모님이 될 수있습니다.
방법이야 여러가지가 있겠지요.
중요한건 나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성모님의 삶 자체도 봉사와 희생의 삶이었듯이 그렇게 따라 사는것이 성모님
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성모님이 되었을 때 나의 행동들이 이웃에게 편안함을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