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실의 커다란 통 유리창 너머로 멀리 야트막한 능선이 보인다.
능선에는 나무들이 서있다.
잔 가지들이 오밀조밀하게 붙어있는 나무들.
박수근의 그림에는 유독 이맘 때의 나무들 그림이
많았었던 것 같다. 잎이 없는 나무들 아래로
애기 업은 엄마들이 지나가고 할아버지와 손주들이 서있고...
실제 박수근이 모델이 되었다는 박완서의 소설이 나목(裸木)이라는
제목이었었지 아마.
2.
나무는 늘 하늘을 향해 자란다.
재작년 봄에 길을 지다가가 가로수를 심던 사람들이 버린
벚나무 묘목을 보았는데 개울 속에 누운 그 나무는
누운 몸통에서 하늘로 가지를 내고 자라고 있었다.
그렇게 누워 있어도 아무 상관 없다는 듯이.
늘 하늘을 쳐다보고 사는 나무는 사랑의 좋은 비유가 된다.
어떤 상태에 있더라도 제가 살아있는 한
하늘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 것은 변함 없는
사랑의 한 표상이다.
3.
어느 비오는 날 그 나무를 차에 실어다가
수도원 정원에 심었다. 나무는 누워서 자라다가 다시
뿌리를 땅에 묻게 되었으므로 한동안 혼란스러웠겠지만
지금은 다시 방향을 잡고 잘 자라고 있다.
늘 올곧게 뿌리를 땅에 내리고 변치 않는 사랑으로
하늘을 우러르는 나무.
그 나무 아래서 나도 변치 않는 한 그루 나무를 닮은
사람이기를 소망해본다.
<2000. 1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