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가복음 19장 41절-44절
오늘 복음을 읽으면 예루살렘이 혼돈과 파괴로 온통 흐뜨러지는것 같은 느낌
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것은 아니죠.
다만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지 않고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처
형했던 사람들의 마음이 그렇다는 뜻이겠지요.
사람의 마음이 혼돈과 파괴로 가득하다는 것은 그 안에 '악'이 들어찼기 때문
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박해하고 돌아가시게한 사람들의 마음 속에 '악'이 가득 찼었다는
것이지요.
처음에 예수님을 구세주로 맞아들이고 기뻐했던 사람들의 마음 속에 '악'이라
는 원수가 들어와서 모든 것을 짓밟아 버린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구세주가 아니라 반역자로 몰리게 된것이지요.
그렇다면 사람들의 마음 속에 왜 그런 '악'이 들어오게 된것일까요?
인간이란 원래 자신이 기대한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하면 불만이 쌓이게 되
고 그게 터지면 이성을 잃고 본능적으로 행동하므로해서 모자란 기대를 채우
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맞이했던 사람들도 처음에 구세주라고 생각하고 기대를 많이 했었지
요.
"이제 우리도 구원을 받게 되는구나!"라는 커다란 기대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행동과 말씀은 당시의 상식과 너무나 차이가났고 또 그 뜻
을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불만이 쌓이기 시작 했습니다.
결국 예수님께 아무것도 바랄게 없다고 판단을 내리게 되고 예수님을 반역자
로 몰아 처형하므로써 모자란 기대를 채우려고 한것입니다.
불안이 쌓이면서 그 안에서 '악'이 자라난 것이지요.
예수님게서는 오늘 복음에서처럼 모든 일을 아셨고 해결방법도 알고 계셨습니
다.
당신의 고통과 죽음을 피해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하느님의 영광과 인류 구원을 위해 희생을 택하신 것이지요.
사람들이 예수님을 진정으로 알아차리고 가르침을 받아들였다면 '악'은 자라
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그 당시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고, 그렇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또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평화의 길을 간다고 하지만 반대의 길로 더 많은 사람들
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단순히 임시방편적인 방법들로는 이런 큰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것입니다.
...
예수님을 좀 더 깊고 넓게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러오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임만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음을, 땅을 밟고 숨을 쉬어야만 살 수 있었
던 인간이었음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과 치밀해지지 않은 예수님을 쉽게 알리기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좀 더 쉽게 알고 자신의 마음에 모실 때 더 이상의 '악'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시 예수님에게 고통을 주는 일은 없어야 하겠지요.
저를 비롯해서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할 큰 숙제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