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재작년 학교에서 독신 생활에 대한 강좌가 있었는데
그 강좌의 한 부분을 담당하셨던 예수회 신부님의 말씀이
가끔 생각난다.
학생들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신학생들과 수도자들을 위해
학교에서 '성과 독신생활'이라는 강좌를 마련했는데 그 중의
한 부분을 그 신부님이 맡으셨던 것이다.
한참 열강을 하시다가 신부님이 물으셨다.
"여러분이 어떤 길을 택했는지 알고 있습니까?"
무슨 그런 우문이 있나, 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
그 질문은 참 곡진한 것이었다.
수도 성소, 사제 성소, 결혼 성소....
우리는 어떤 길을 택하지만 그 길은 모두
사랑하는 삶으로의 초대라는 점에서 같은 길이다.
그러면서 그 신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성소란 지키는 것이 아니라 가꾸는 것입니다."
2.
어떤 소설가가 있었다.
그는 아내를 무척 사랑했는데 아내에 대해 무척 궁금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아내의 알몸이었다.
아내는 결혼한 지 십 년이 넘도록 그에게 알몸을 보여주지
않았던 것이다. 소설가는 여러 번 아내를 졸랐지만 그미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소설가는 직장에서 전화를 받는다.
부인이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병원에서 그를 급히 찾는다는
것이었다. 황급히 병원으로 달려간 그는 다친 아내가
환자복을 갈아 입혀 달라고 자신을 불렀음을 알게 된다.
소설가는 옷을 갈아 입히고 나서 아내에게 묻는다.
이렇게 (알몸을) 보게 될 것을 왜 그렇게 숨겼었느나고.
아내의 대답.
"결혼하고 살면서 늘 당신이 놀라웠어요.
이만큼 살았으니 당신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당신이 새로 내는 책을 보면 늘 모르는 것들이 가득하더군요.
그렇게 생각하면 당신은 내게 미지의 존재였고 더 매력적인
사람이었지요.
그래서 생각해보았어요. 나는 당신에게 어떤 알려지지 않은
부분을 갖고 있을까?
내가 감추고 싶었던 것은 그것이었어요.
나의 알려지지 않은 부분.
하지만 이제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누군가에게 내 알몸을
보인다는 게 싫어 당신을 부르게 된 거예요."
3.
사랑은 가꾸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을 가꾸는 데는
늘 지혜가 필요하다.
소설가의 아내처럼 지혜로운 사람을
누군들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2000. 1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