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과학은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 계절과 밤낮의 생성 원인이라고 한다.
이 내용을 창세기 8장 22절에서 발견한다.
땅이 있는 한
뿌리는 때와 거두는 때,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밤과 낮이 쉬지 않고 오리라.
여기서 ‘땅이 있는 한’ 에 주목해 보면
춘하추동과 밤낮이 직접적으로 ‘땅’으로 인한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하느님(의 말씀)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창세기 1장 1절에서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다-
-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heaven, and earth
여기서 하늘은 단순히 파란 하늘(sky) 이라기보다는
영적인 세계(heaven)를 뜻하고 땅은 그와 대비대는
물질세계를 뜻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앞서 이야기한 창세기 8장 22절의 상황은
지구상에 노아의 홍수가 끝나 땅이 마른 시점에서 언급된
‘땅’이라는 개념은 구체적으로 ‘지구’를 뜻한다고 본다.
알고 보면 성서는 과학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중세시대에 천동설과 지동설로 과학과 종교의 대립
양상이 있었다고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서의 어느 구절에 ‘지구는 평평하다’ 라든가
‘지구는 돌지 않는다 ’ 는 구절이 있었던다?
그보다는 그리스도교 교리를 잘 이해시키고자 사용했던
희랍 철학이 그 개념 속에 ‘천동설’적 개념이 들어 있어
문제가 되었다고 보는 견해에 동의한다.
물론 성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성경의 오류처럼
생각되는 구절을 찾아내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창세기 6장 3절
[그래서 야훼께서는 “사람은 동물에 지나지 않으니
나의 입김이 사람들에게 언제까지나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사람은 백 이십년 밖에 살지 못하리라.“ 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기네스북에서 120살 넘게 산 사람들을 접한다.
이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재미있는 것은 이것이 그 이후 창세기 7장에서 설명되고
있다고 나는 본다. 창세기 7장 6절
[땅 위에 홍수가 난 것은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였다]
즉, 앞서 표현된 ‘백 이십년’ 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120년’으로
보면 안 된다는 것을 성서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오만가지 일로 머리가 아프다)는 표현이
정확히 오만 가지 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120은 12와 10의 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