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의로움이 율사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보
다 더 넘치지 않으면 여러분은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율사들과 바리사이들의 태도를 보면 그 자신들만의 의로움만을 고
집하면서 죄인들에게는 자신들의 의로움에 해가 될까 해서 그들을
피하고 그들을 경멸한다. 그러나 스승이신 예수님의 모범은 죄인들
을 구원하고자 하신다. 그들과 함께 하시려 하고 스스로 그들의 죄
를 짊어지시고 그들이 떳떳한 시민으로 살게 될 줄을 알고 흐뭇해
하신다. 게쎄마니에서 모든 이의 공포, 번민을 안고 피땀을 흘리셨
고 모두가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빵의 모습으로 당신을 다
주시며, 십자가에서 모든이를 대신하여 처형당하신다. 율사들이 죄
인들에는 무관심하고 오히려 피하기까지하는, 자신만의 의로움 추
구는 오히려 죄가 되었다. 그들의 태도는 창세기에서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고 나서 하느님이 카인에게 아벨이 어디 있느냐하고 물
으셨을 때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했던 죄인의 태도와
그 모습이 같다. 참된 의로움은 나뿐만 아니라 내 형제가 하느님
앞에 떳떳하고 올바르게 살도록 항상 그를 돌봐주는 것이다. 율사
들처럼 의로움이 자신안에만 있어서는 안되고 그 의로움이 넘쳐서
내 이웃까지 이르러야 한다. 주님께서 그 구체적인 예를 들어 주신
다.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 너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거든 그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그를 찾아가 화해하고
나서 돌아와 예물을 드려라.' 내가 원한을 품고 있는 형제가 아니라
나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상대를 위해야 한다. 내가 미움에 고통받
고 있지 않다고, 나만 괜찮다고 형제를 내버려 두는 것은 옳은 일
이 아니다. 사실 내 형제가 어둠 속에 있으면 나도 알고 보면 어둠,
감옥 속에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어둠에서 풀려날 때 나 역
시 거기에서 풀려 난다. 왜 내 형제가 어둠에 있는데 나까지 같이
어둠에 있어야 하느냐? 바오로 사도는 그 이유를 설명한다. '한 지
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고통을 당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
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웃은 내 몸의 일부이다.
그를 사랑하는 것이 바로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결국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과 다른 것이 아니
다. 이것이 스승 예수님의 모습이고 의로움이 넘치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