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만년필을 찾았다.
책 무더기 속에 앉아 있었다.
안정효의 [번역의 테크닉],김정훈 부제의 [산 바람 하느님 그리고 나],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들이 그동안 만년필을 숨겨 주었던 게다.
그래 그동안 명상을 좀 했나?
가끔씩 폭풍의 언덕에 올라가서
산, 바람, 하느님과 나, 만년필을 생각했었나?
번역의 테크닉도 연구해 보았나?
나의 건망증은 내가 생각해도 좀 심한데
언젠가 금요일날 학교 체육관에 가서 배드민턴을 치다가
겉옷을 벗어 배드민턴 코트 옆에 걸어놓고서는
깜빡 잊고 그냥 집에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 다음 주 월요일에 체육관에 갔다가 낯익은 가디건을 발견하고
"어? 이게 왜 여기 있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우리들은 '돌머리'라는 말을 쓰지만
미국 사람들은 'bonehead'라는 말을 쓰는 것 같다.
정말 나도 머리가 온통 딱딱한 뼈로만 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잃음'은 언제나 '잊음' 뒤에 온다.
내 마음이 그에게 곁을 내어주지 않을 때
그는 내 마음 속에 머무르지 않고 급기야 나는 그를 잃어버린다.
오늘은 늘 당연하게만 여겼던
내 곁의 모든 것들을 다시 돌아보아야지.
나도 모르게 소중한 것들을 잊어버리고
종내는 아예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그때 가서 두터운 머리 두드리며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