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풍경]
내 안의 여성성
호박 모종을 옮기려고 아랫 동네에 가서 거름을 가져왔다.
아랫 동네에 문을 닫은 돈사가 있는데
거기 돼지똥이 알맞게 썩어 거름을 하기에
안성마춤이다.
양재기를 가져다가 거름을 담아들고 일어서려다
삽을 처리하기가 마땅치 않아 아예 양재기를
머리에 이고 한 손으로 삽을 들었다.
야트막한 고개를 넘어 집으로 돌아오면서
옛날 생각을 했다.
나는 할머니 손에 자랐는데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내 동생, 이렇게 단촐한 우리 식구 중에
어른은 할머니와 어머니 두 분뿐이었다.
자연히 여성스럽게 자랐고 일을 할 때도
머리에 이고 다니게 되었다.
덕분에 또래 애들한테 놀림도 많이 받았지만
내 안에 키워진 여성성이 무척 소중하다는 것을
근래에 깨닫게 되었다.
긍정적인 의미로서의 여성성, 그러니까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고 생명을 돌보는 일에 민감한
성향과 같은 것은 쉽게 배워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뒤 사춘기 때부터 지금까지는 사촌형들과 함께 살며
공부를 한다든가 군대 같은 남성들의 사회 속에 말 그대로
내던져져서 산다든가 하는 식으로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남성성을 배양하는 시기였다.
이제 나름대로의 소견이 생겨 생각하기로 여성들에게는
남성성이, 남성들에게는 여성성이 필요하다는 것.
여성학자들은 " 정상적인 남성은 51%의 남성과 49%의 여성으로
이루어져 있고 정상적인 여성은 51%의 여성과 49%의 남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한다.
문제는 그런 것을 부정하는 데에 있다.
"남자(여자)는 이래야 해!"하는 게 어디 있겠는가.
나는 짐을 머리에 이고 다닐 줄 아는 내가 마음에 든다.
약하고 가녀린 것들에 마음이 가는 내가 참 마음에 든다.
삽질도 잘 하지만 무거운 짐을 일 줄 아는 것,
약한 것을 보살피지만 단호할 줄도 아는 것,
이런 것이 어쩌면 완덕으로 가는 작은 실천방법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2000.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