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을 베느라고 낫을 들고 밖에 나가 있었더니 제법 땀이 난다.
내 어릴 적에는 어른들이 낫도깨비가 있다고 해서 괜히 무서워 했었다.
도깨비만 해도 무서운 판에 시퍼런 낫을 들고 있는 도깨비라니
얼마나 무서운가.
하지만 이제 생각하니 그 도깨비는 낫을 들고 있는 도깨비가 아니라
낮에도 돌아다니는 낮도깨비가 아닌가 싶다.
다른 도깨비들은 밤에 돌아다니는데 이 녀석은
그것이 성에 안 차 낮에도 돌아다니는, 이를테면
자기 기를 주체 못하는 도깨비가 아닐까.
하여간 그 때는 혼자 고개를 넘어 이웃동네라도 가거나 할 양이면
공연히 뒷머리가 쭈뼛쭈뼛 했었으니 수풀 사이로
도깨비의 시퍼런 낫이라도 얼핏 본 것 같았었기 때문이다.
뱀을 잡아 바다에 빠뜨리면 장어가 된다고 믿었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의 무서움과 즐거움과 꿈들은
신화처럼 내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것 같다.
머리가 조금 굵어질 무렵 우리는 입산이 금지된
동네 당산에 올라가 놀았는데 그 산은 아주 옛날부터
당 할머니를 모시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는 당집이 있는 산이었다.
산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된 것은 물론이고 나무를 베는 것도
금지되어 있어서 활엽수인 잣밤나무가 극상을 이루고
낙엽이 푹푹 발이 빠지게 쌓여 있었다.
칡들이 나무를 친친 감고 올라가고 덩굴들이 늘어져
당시에 텔레비젼에 나오던 타잔 놀이를 하기에 안성마춤이었다.
우리 남자애들은 타잔, 보이, 제인, 인디언들로 나누어서
재미있게 놀았다.
나는 인디언이었다.
하루는 인디언들이 보이를 잡아다가
본부에 묶어놓고 심문을 하고 있었는데
당산에서 들리는 타잔의 고함소리와
인디언들의 툭탁거리는 소리를 들은 동네 이장님이
회초리를 들고 우리를 잡으러 오셨다.
혼비백산한 우리는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을 쳤다.
덕분에 묶여있던 보이만 이장님께 잡혀서 경을 쳤다.
여름철이면 바닷가에 가서 헤엄을 치고 놀았다.
수영팬티 같은 것은 입지 않았고 덕분에 여름이 끝나갈 쯤이면
아이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주아주 새까매져서
눈만 말똥말똥했었다.
한 철 동안 햇볕에 탄 살갗이 세 번 벗겨졌었으니
지금 내가 이렇게 까만 것은 그 때의 좀 과한 선탠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이런 내력으로 타고르가 어떤 시에서 노래한 것을
나는 깊이깊이 이해한다.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던 그 시를 기억하시는지?
".....영원의 바닷가에서 아이들이 뛰어놉니다...."
낫을 든 도깨비가 낮에도 돌아다니는 곳,
회초리를 든 이장님을 피해 달아나던 잔솔밭이 있는 언덕,
그리고 발가숭이 아이들이 웃고 장난치며 뛰어노는 바닷가....
그 영원의 산과 바닷가를 언제 다시 뛰어다닐 수 있을까.
<2000. 5.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