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있거든 그리로 가세요
그렇지요, 좁기 때문이에요. 높아만 지세요.
온누리 보일 거에요. 잡답 속 있으면 보이는 건 그것뿐이에요.
하늘 푸르러도 넌출 뿌리 속 헤어나기란 두 눈 먼 개미처럼
어려운 일일 거에요.
보세요. 이마끼리 맞부딪다 죽어가는 거야요. 여름날
홍수 쓸려 죄없는 백성들은 발버등쳐 갔어요. 높아만 보세요.
온 역사 보일 꺼에요. 이 빠진 고목 몇 그루 거미 집 쳐 있을 거구요.
하면 당신 살던 고장은 지저분한 잡초밭, 아랫도리 붙어 살던
쓸쓸한 그늘밭이었음을 눈뜰 거에요.
그렇지요. 좀만 더 높아 보세요. 쏟아지는 햇빛 검깊은 하늘밭
부딪칠 거에요. 하면 영 너머 들길 보세요. 전혀 잊혀진
그쪽 황무지에서 노래치며 돋아나고 있을 싻수 좋은 둥구나무 새끼
들을 발견할 거에요. 힘이 있거든 그리로 가세요. 늦지 않아요.
이슬 열린 아직 새벽 벌판이에요.
신 동 엽
오늘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시작되는 날.
아무리 이 칼럼이 마음의 풍경이라지만
그저 사적인 이야기만 늘어놓기에는 마음이 울렁거려
신동엽 시인의 시를 적어봅니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하고
노래했던 시인도 지금 하늘에서 기뻐하고 있지 않을까요.
갈라져서 서로 원수가 되어 반목하고 싸우던 우리 민족이
이제 정말 서로 화해하고 아껴주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는
가는 걸까 생각하니 마음이 절로 기쁨으로 가득차는 듯합니다.
순진하고 감상적인 사람이라고 뭐라 한대도 할 수 없지만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들, 우리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들이
처음에는 이웃하여 오손도손 살았을 이땅에서 그 아들의 아들의 아들들,
그 딸의 딸의 딸들인 우리가 서로 돕고 아끼며 살게 될
그날을 생각하는 것이 어찌 감상에만 그칠 일일까요.
"....예전에는 우리가 서로 싸우며 살았었단다.
그 때는 왜 그랬었는지 모르지만 너희들은 항상 사랑하며 살아라..."
우리 아들의 아들들에게 옛날 이야기해주며 살 날을 꿈꿔봅니다.
통일을 위해 애쓰시던 늦봄 문익환 목사님은 이런 말씀을 남겼지요.
"하나가 된다는 것은 더욱 커지는 일입니다."
늦었지만 의미 있는 걸음을 내딛는 우리 민족 위에
하느님의 축복이 가득하기를 빌고 또 빌어 봅니다.
<2000. 6.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