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가 운다.
경당에 가만히 앉아 혼자서 더꺽더꺽 가는 시계소리와 뒷산의
뻐꾸기 소리를 귓등에 흘리고 있으면 마치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같다.
재작년에 신학교에 뻐꾸기 수사님이라 불리던 수사님이 있었는데
늘 웃음을 담고 있는 얼굴이 어쩌다 레크리에이션 시간이 되어
앞에 불려나오기라도 할 양이면 더욱 재미 있는 표정이 되곤 했다.
오후에는 고구마 밭의 김을 매었다.
기말고사를 치르느라 그 동안 통 돌아다보지를 못해
풀들이 잔뜩 나있었다.
풀들도 살려고 이렇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을....
풀을 뽑으면서도 속으로는 미안한 마음.
오전에는 뒷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뽕나무밭에 가서
오디를 따고...,
오디가 무어냐고요?
뽕나무 열매를 오디라고 한답니다. 예전에 이곳에 잠사가 있었는데
그래서 뽕나무가 우거져 있다.
까만 오디가 손을 대기만 해도 툭툭 떨어진다.
한 시간쯤 무성한 뽕나무 아래를 돌아다니며 오디를 땄더니
손바닥이 온통 빨개졌다.
정지용 시인의 싯귀 가운데 " ...내사 왼통 빨개졌네.."
하는 게 있다. 그건 물론 추워서 빨개진 볼을 말하는 것이다.
아무렇든 오디물로 빨개진 내 손바닥을 들여다보며 "..내사 왼통
빨개졌네..." 하고 중얼거리는 것이 재미있다.
따온 오디는 삼분의 일은 씻어서 점심 후식으로 먹고 나머지는
술을 담갔다.
주둥이가 좁은 큰 병에 오디술을 담가 책장 맨 위에 올려놓으며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언제고 정다운 사람이 오면
이 술을 내려 함께 마시리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서로 붉어진 얼굴을 놀려댈지도
모르지.
"...내사 왼통 빨개졌네..."
방학이 되어 내일이면 본원으로 간다.
가끔씩 박자를 놓쳐 '뻐뻐꾹 뻐뻐꾹'하고 우는 뒷산의 뻐꾸기와
풀들 속의 고구마와 내 책장 위의 오디술들 모두 잘 있기를,
햇살이 더 조밀해지는 사랑스런 구월이 될 때까지.....
<2000. 6.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