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않을 편지
가끔씩 편지가 와요.
저쪽에 남아 있는 내가 보내는 편지.
스물 몇 해 거기 살며
사람들 마음 속에 나도 두엇 살게 되었었겠죠.
세상 모든 것들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
그 무엇보다 아름답노라고
어떤 이 노래하지만
그래 나 여기서 건너편에 사는 내가
조금씩 빛 바래 가는 걸 바라보는 게 즐거워요.
돌아보면 저편 사람들 따라와
두엇 내 옆에도 살고 있어요.
그 이들도 조금씩 바래져 가서
언젠가 보이지 않게 되겠지만
그 땐 저 쪽에도 내 모습 없을 테지요.
푸른 여름 날 오후
소나기 개이고
휘황하던 무지개마저 사라져
언제나처럼 옛날의 하늘만 남았을 때
그 눈부신 적멸 속
그 땐 무엇이 남아 있을까요.
오랜만에 시를 써봅니다. 시는 아무나 쓰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알지만 오랜만에 편지를 받고 생각나는 대로 끄적여 보았습니다.
마음은 언제나 흐르는 것이라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외로울 때도
있는 거겠지요.
그 마음을 한없이 긍정해나가다 보면 처음 하느님이 나를 내실 적에
내 안에 불어넣어주셨던 그 사랑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전에 오는 모든 것들, 기쁨,슬픔,외로움,두려움,분노들은
모두 감싸안아야 할 것들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날씨가 무척 더워졌습니다.
짜증난다고 화내지 말고 더위에 고생하는 몸을 불쌍히 여겨주는 것도
좋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 자신을 잘
돌보시기를 빕니다.
<2000. 6.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