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인은 성바오로의 표양대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살아갑니다.
(창립자 G.알베리오네)
(창립자 G.알베리오네)
12/5 대림 제1주간 화요일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오늘날, 독서에서 예언자 이사야가 보는 것을 느끼기가 쉽지 않은 시대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표현하기 힘든 하느님의 나라를 성경의 언어들은 담아내고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기도할 때, 하느님께서 단순히 하늘에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은 우주를 비행하며 “우주 어디에도 신은 없더라”는 말을 남기고 우주 비행사 티토프는 지구 귀도를 한 바퀴 돌며 “지구 위에 올라가서 몇 바퀴 돌아보았지만 하느님은 보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반면에 닐 암스트롱은 달에 착륙하여 아름다운 지구를 보며 "하느님이 지으신 이 우주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신앙을 고백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늘에 계시다고 기도할 때 하늘이 단순히 지구 상공이나 우주 어느 한 공간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압니다. 하늘에 계시다는 뜻은 하늘을 신으로 섬기던 고대 시대에 하늘이 신이 아니라 하느님이 다스리는 세상이며 하느님은 하늘에도 계신다는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하늘이라 부를 정도로 신앙이 발전한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의 세계에서는 진화론이 통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의 신앙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신앙의 표현이 고대에 만들어지고 발전되었던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는 삶은 본래 우리가 지닌 순수한 신앙의 감각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복음에서 동방박사들이 별을 과학적으로 관찰하여 메시아의 탄생을 알아보고 경배드릴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오늘날에도 과학에서도 신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림 | Pixabay로부터 입수된 pencil parker님의 이미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