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복음 6장 17절-29절
세례자 요한은 뒤에 오실 예수님의 길을 미리 준비하는 역할을 맡은 분이었습
니다.
그라고 세례자 요한의 죽음은 예수님의 오심을 알리는 것이지요.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죽음을 예측했을 것이고 그 죽음이 예수님의 오심의 표
시라는것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비록 그의 죽음은 처량했지만 기쁘게 받아들였을 것이고 기꺼이 죽음을 맞이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구세주를 위한 자신의 희생이 하느님께 큰 영광이 될 수 있었을 테니까요.
철학 수업시간때 들은건데, 어떤 존재의 소멸은 단지 소멸로 끝나는게 아니
라고 합니다.
새로운 다른 존재의 생성을 위한 과정이라고 하더군요.
즉, 나의 죽음은 그냥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는걸로 끝나는게 아니라 새로
운 생명이 탄생하는 공간과 존재이유까지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위한 공간과 존재이유를 말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세례자 요한까지는 구약을 의미합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의 일
들을 완성하시면서 신약에서의 구약의 완성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변에서도 탄생과 죽음은 거의 매순간 이어집니다.
그렇게 많은 생명이 탄생하고 죽어가는데 세상은 똑같이 흘러갑니다.
모든 탄생과 죽음은 공간의 비움과 채움의 반복이기 때문에 나의 죽음으로 인
한 부족은 새로운 탄생으로 인해 채워집니다.
위의 내용으로 이런 말을 다시 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형제를 위해 목숨을 받치는것만큼 값진 사랑은 없다.'
우리가 형제를, 이웃을 사랑하고 나의 희생과 봉사로 하느님을 알고 행복할
수 있다면 기꺼이 희생,봉사할 수 있을것입니다.
실제로 죽는 것이 아니라도 희생과 봉사로 인해비워진 나의 공간을 이웃과 형
제의 기쁨으로 채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행복감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작은 손해로, 우리의 작은 피해로 비워진 자신의 공간을 타인
의 보람과 행복으로 채워나가는 것은 결국 내안에 주님을 모시기 위한 준비
가 이닌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