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협함이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오늘 복음 말씀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본다면
권위 의식이 아닐까 합니다.
권위 의식이라고 해서 뭐 대단한 것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같은 동기끼리도 자기가 주로 쓰는 잔을
별 생각없이 남이 쓰고 있는 것을 볼 때
불쾌해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열을 내서 내 생각을 개진했는데
누가 딴소리 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그 사람의 의견을 신중히 경청하기보다는
무시당한 느낌이 우선 들지요.
권위란 침해받을 때 화를 내는 법입니다.
누군가가 허락도 받지 않고
나에게만 유보된 일을 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기분 좋은 일이 아닌 것만은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관대함의 넓이는
도대체 어디까지일까요?
도대체 어디까지 포기해야 하는 걸까요?
그러고 보니 관대함이란
포기라는 것과 연결이 되네요.
그분의 심중을 헤아려 드리자고 말하면서
과연 우리는 편가르기나 하고
고집이나 부릴 수 있을까요?
영적인 사람이 되겠다고 집을 나온 내가
오늘 하루 무엇을 주장하며 다녔는지
내가 봐도 참 한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