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야곱의 샘이 있었는데 먼 길에 지친 예수께서
샘가에 주저앉으셨다.
- 요한 4,6 -
지쳤다고 느껴질 때, 내 마음이 부석부석 아주 메말랐다고
느껴질 때 요한 복음 4장을 읽으면 마음에 위로가 된다.
예수님도 목이 마르고 지치셨구나.
그래서 힘든 다리를 접고 풀썩 야곱의 샘가에 주저앉으셨구나...
아버지와 어머니의 집을 떠나 길을 나서는 것은
목마름과 배고픔과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것이지만
그 길을 걷는 과정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집이 얼마나
좋은 곳인가를 새롭게 깨닫는 길이기도 하다.
며칠 전 공동체의 수사님 두 분이 공부하러 해외로 떠나던 날
아침 식탁에서 우리 형제들이 노래를 불러주었는데
오랫동안 못보겠구나 하는 생각에 노래 부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마음이 찡했었다.
노래가 끝나자 수사님 한 분이 떠나는 수사님 어깨를 안고
하는 말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의 집이 얼마나 좋은지 알겠지?"
'만나는 사람은 헤어짐을 예비하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
(會者定離 去者必返)는 부처님 말씀도 있지만 우리가 떠나는 것은
돌아오기 위함이다. 다만 그 길 위에서 우리가 지치고 목마를 때
아버지의 집을 생각할 수 있다면, 예수님도 지쳐 샘가에 주저앉으셨
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면 다시 일어서 걸을 힘이 나리라는 것,
그럴 때 아버지의 집과 야곱의 우물은 머리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처한 바로 그 자리에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소설가 신경숙은 어디선가 그런 말을 했었다.
언제나 우리 존재의 내면을 변화시킨 것은 사랑이었다고,
인간은 사랑이 있는 한 자기 내면의 우물에 자신을 비추어 보는
법이라고....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를 것이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샘이 되고 거기서 물이
솟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입니다."
요한 4, 13ㄴ - 14
아멘.
<2001. 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