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6주간 수요일 복음(마르 8,22-26)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
교 기념일
피정을 하고 단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이렇게 참담한 기분이 들어보긴 처음
이다.
"저 마을로는 돌아가지 마라."고 하신 저 마을은 어디인가?
예수께서 가지 말라고 하신 그 마을은 사람마다 각각 다를 것이다.
<베싸이다 소경>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사람은 이제 예수께 치유받고 소경으로
서의 일생은 끝이 났을 터이다.
그가 소경으로 돌아다니던 그 마을, 사람들이 소경으로 기억하던 그 마을을
벗어나라 하심은, 새로운 사람으로 새 생활을 하라는 명령이 아닐까?
나에게 있어 소경처럼 살아가던 그 생활의 터전은 어디인가?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다.
소경임을 불편해하고 소경의 신세를 벗어나게 해달라고 그처럼 원하고 있으면
서도.... 이런 저런 핑계와 이유를 대며 자신의 처지를 다른 이에게 이해시키
려 하고 합리화하려 했던 수많은 악습들과 게으름.
새로운 나의 모습을 고대하고 있으면서도.... 실은 환경을 바꾸고 나 자신을
쇄신시키기에는 너무나 두렵다.
차라리 익숙한 나의 어두움에 안주하고 싶어하는 비겁함과 어리석음.
주님이 돌아가지 말라고 하는 그 마을에는 오랫동안 나의 변명을 들어주었
던, 때로는 위로를 주고 같이 아픔을 나누었던 똑같은 소경친구들이 살고 있
는 마을이다.
그들의 위안에 익숙해지고 서로의 처지를 동정했던 그곳에서 한없는 연민에
길들여져 있었던 것이다.
손만 뻗치면 얻을 수 있었던 그 도피처들.
그것을 다 털어버리고 눈을 뜨게 해주신, 새로운 분만 의지하고 살아가기에
는 너무나 불확실하고 낯설어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이다.
더구나 그분과 함께 있다는 확신도 없이 따로 나의 갈 길을 가라고 하시
니.....
그분이 정말로 새로운 나를 만들어주실 분이라는 것을 어슴푸레 알고나서
도.....
좀 전까지 견고한 피난처였던 그 마을이 허망한 모래성이었음을, 나의 눈을
가리우는 장애물이었음을 어슴푸레 알고 나서도....
계속 그 곁을 떠나지 못하고 안절부절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며 참담한 마
음을 가눌 길 없다.
독서(창세 8,6-13.20-22)에서는 노아가 지면에서 물이 얼마나 빠졌는지 알아
보려고 까마귀를, 비둘기를 자꾸 내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살 궁리를 찾기 위해서다.
방주가 아무리 그럴 듯해도 역시 땅에서 살아가야 하겠기에 말이다.
임시의 피난처가 아닌 자유롭게 살아갈 대지를 찾는 노아.
노아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쁜 소식을 듣고 배 뚜껑을 열고 나왔다.
뿐만 아니라 주님 앞에 제단을 쌓고 제사를 지내기까지 한다.
주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며 마음껏 축복을 받고 있는 노아를 통해 다시
이 세상은 살만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의 꼴은 무언가?
나는 임시 도피처에 몸을 맡기고 수없이 비둘기만 내보내기만 하고, 살아갈
만한 믿음직한 땅이 있다는데도 나오지 않고 있는 꼴이 아닌가.
아무래도 주님께 다시 손을 대시어 눈을 성하게 해달라고 청해야 할까보다.
그리고 아예 나의 발을 꺾어 놓아달라고 빌어야 할까보다.
저 마을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도록...
하루도 지키지 못하는 결심을 또 다시 해야 하는 걸까?
이처럼 상처투성이가 되어서도 또다시 발을 부러뜨려달라고 간청을 해야만 하
는지 비탄스러운 저녁이다.
주님, 도와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