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5주간 목요일 복음(마르 7,24-30)
예수께서 이방인 지역 띠로에 가셨을 때의 일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계시려던 예수님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그분이 자기 지방에 와 계시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버렸으니까....
주님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은 너무 많고.....때로 주님은 은둔하신 것 같아
애가 탈 때가 많다.
금쪽 같이 사랑스런 딸의 고통을 보고 애끓는 어머니의 심정도 이와 같았으리
라.
이제는 사람이라고 하기엔 너무 끔찍하게 변해버린 귀엽던 딸.
사방을 찾아다니며 용타는 의사들을 찾아 보였지만, 정체불명의 병이라 하여
일명 마귀 들렸다는 판명이 내리고 이제는 하늘의 도움만 의지하려 하는
데....
때마침 예수라는 사람의 소문을 들었겠다.
한걸음에 찾아와 간청을 한다.
그러나 왠걸? 소문과는 전혀 다른 사람 아닌가.
"자녀들을 먼저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이 먹는 빵을 강아지들에게 먼
저 주는 것은 좋지 않다."
'자녀는 누구고 강아지는 누구냐? 하느님이 뽑은 선민이라고 의시대면서 다
른 민족을 개나 돼지로 얘기하던 건방진 유다인들과 똑같은 말씀을 하다
니.... 하지만 그건 내 힘으로 어찌 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나? 차라
리 무엇을 하면 나을 거라거나 무엇을 가지고 오면 고쳐준다거나 하면, 죽을
힘을 다해 해보기라도 할텐데.... 이건 어쩌라는 것인가'
여자는 난생 처음 자신의 태생을 원망하였지만 아무리해도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 아닌가.
"선생님, 그렇긴 합니다마는 상 밑에 있는 강아지도 아이들이 먹다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얻어먹지 않습니까?"
자신이 개가 되든 돼지가 되든 그것은 여자에게 문제도 되지 않나 보다.
그녀의 관심은 오로지 사랑하는 딸의 치유였던 것이다.
오! 장하다. 어머니의 사랑이여!
마침내 주님을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주님의 때를 움직이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사랑에서 나온다고, 온갖 모멸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에서 나온다고 오
늘 복음은 말하고 있구나.
그렇다면 주님의 때를 믿고 그분이 한결같은 자비를 베푸시는 분임을 믿는 사
람들아!
그분의 때를 앞당기고 싶거들랑, 주님의 느린 걸음에도 지칠 줄 모르는 믿음
으로, 사랑으로 자신을 가득 채워야 하지 않겠나?
주님의 때를 앞당긴다?
아니면 혹시 그분의 때가 바로 그 순간이었을 수도 있다.
자신의 것을 완전히 포기해 버린 순간.
이방인 어머니가 세상의 방법을 모두 잊고 자신의 명예도 체면도 모두 내어놓
고 필사적으로 주님께만 의탁하여 자신을 주님께 투신하던 그 때.
그 때가 바로 주님이 계획하셨던 때였던 것은 아닐까?
우리가 말하는 기적이란 것이 바로 자신을 완전히 비워버리고 그분께 의탁할
때 이루어지고 있음을 복음서 곳곳에서 보았다.
주님의 때를 앞당기기 위해서 무엇 무엇을 해야 한다면 그것이 아무리 지고
한 사랑의 행위라고 해도 태산처럼 큰 믿음이라 해도 그것은 또 하나의 거룩
한 기만이요 술수가 아닌가.
무엇을 얻기 위해 또 다른 무엇을 하는 것은 진정으로 자신을 버리는 행위가
아니며 주님의 위대한 권능을 믿지 못함이다.
다만 아무 것도 아닌 자신을 인정하고 그래서 주님의 권능을 바라며 주님의
때가 이루어지도록 기도할 뿐이다.
"주님, 우리는 당신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라도 먹어야 비로소 살
수 있는 존재이옵니다.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도와주십시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