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묵상]
가난이 행복하다고 선언하는 역설의 근거
연중 제 6주일 복음 (루가 6,17. 20-26)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하고, 지금 굶주린 사람들이 행복하고, 지금 우는 사람
들이 행복하다는 믿기지 않는 말씀의 근거는 무엇일까?
도처에 널려있는 가난하고 굶주리고 울고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너희는 행
복하다!"고 말해보라.
당장에 따귀를 얻어맞을 일이 아닌가.
성서학자들은 사람의 아들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고 내어 쫓기고 욕을
먹고 누명을 쓰면 행복하다는 네 번째의 행복선언은 박해가 가해지는 시점에
서 신자들을 격려하기 위한 초대교회의 덧붙임이라고 이야기한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입으로 발설된 원초적인 행복선언은 위의 세 가지라는 것
이다.
초대교회의 입장을 반영한 마지막 선언은 어느 정도 교회의 역사를 아는 신앙
인에게 있어서는 수긍이 가는 말이다.
그러나 첫 세 가지의 행복 선언은 아무리 너그럽게 이해하려해도 마음에 썩
내키지 않는 말씀이다.
더구나 부요한 사람들, 지금 배불리 먹고 지내는 사람들, 지금 웃고 지내는
사람들은 불행하다고 하는 불행선언은 우리를 더욱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
다.
불행선언 역시 초대교회, 아니면 루가 복음사가의 덧붙임이라는 說이긴 하지
만....
그 앞에 라든지, 라든지, <
가난한 이웃들을 모른척하고>.....등등의 말이 붙어 있다면 그것은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말씀이라 수긍이 갈텐데 말이다.
아무 조건도 달지 않고 말씀하시는 그야말로 무조건적인 행복과 불행이다.
예전엔 무조건 흥부는 착하고 놀부는 나쁜놈의 대명사처럼 여겼었지만 요즈음
은 고전도 다시 따지고 분석하는 추세가 아닌가.
가난함이 무조건적으로 측은지심을 발동시켜야할 대상이 아닌 세상이다.
게을러서 가난한 것은 아닌가?
도와 주어야할 가치가 있는 가난인가?
무능력하다는 것이 자랑인가?
....를 꼼꼼이 따지고 재는 세상이며 그런 것을 잘 구별하는 것을 이성적이라
고 칭송한다.
이런 세상에 예수께서는 정말 아무 조건없이 행복을 선언하시는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그들에게 행복을 선언하는 것이 마땅치 않은지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자꾸 무슨 이유를 첨가해서 해설하려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역설은 한가지를 전제하지 않고는 성립될 수 없는 발상이다.
그것은 하느님이 계심을, 그리고 그분은 가난한 자를 무조건 편드는 하느님이
심을, 또한 이 세상이 유일한 세계가 아님을 믿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이며, 그것을 믿는 사람만이 아무 반론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진리가 되는 것
이다.
사람들이 점점 영악해지고 이성적이라는 명분으로 남의 불행을 재고 따지고
하는 동안, 그들은 어느 누구에게도 이해 받지 못한 채로, 보살핌을 받지 못
한 채로 살아간다.
오직 한 분, 무조건적으로 편들어주시는 하느님만이 그들을 보살핀다는 사실
에 우리는 불만을 가질 수도 따질 수도 없다.
사람들의 인정을 기대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 굶주린 사람들, 울고 있는
사람들은 오직 한 분 하느님께만 기대하고 의지할 수밖에 도리가 없다.
루가복음에서의 의 의미가 바로 그렇게 하느님의 손길만을 기다리는
상태를 이야기한다.
하느님만 바라기에 하느님이 해결해 주실 의무를 느끼시는 것이다.
제1독서(예레 17,5-8)에서 예언자의 입을 통해 주님은 말씀하신다
"나에게서 마음이 멀어져 사람을 믿는 자들, 사람이 힘이 되어 주려니 하고
믿는 자들은 천벌을 받으리라."
"나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복을 받으리라."
그러나 굶주린 사람들, 우는 사람들이 지금 당장에 배부르고
지금 당장에 웃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언제 배부르게 되고, 웃게 된다는 말인가?
제2독서(1고린 15, 12. 16-20)에서 이야기하듯이 이 세상의 삶이 끝이 아니라
는 말씀을 믿는 사람만이 공정하신 주님의 정의를 불만없이 받아들일 수가 있
다.
부활의 삶이 없다면 이런 모든 말씀은 물거품과 같다.
내세의 삶을 믿지 않는다면 루가의 평지설교만큼이나 무의미한 말씀이 어디있
으랴?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인정한다면 애초에 그리스도 신앙은 어리석은 속임수
에 불과하리라.
지금 운다고, 지금 가난하다고, 지금 굶주리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불행의 끝
이 아님을 믿는다면, 반드시 행복한 날이 있을 것이라고 믿기만 한다면, 그렇
게 절망적이지는 않다.
지금 웃고 있다고, 지금 부요하다고, 지금 배부르다고 해서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지만 않는다면, 좀더 겸손하고 좀더 다른 이들을 위해 뭔가를 시도할 수
있는 희망이 있다.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라는 것을, 하느님은 공평한 분이시라는 것을 언제나
염두에 두도록 가르치시는 진리이다.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와 평지에 이르러서 하신 말씀.
평평한 이 세상, 사람들이 모여 살고있는 오늘, 이시간에, 그 진리를 실천하
라고 하신다.
다음 세상까지 갈 것없이.....
"너희가 내세를 믿고, 하느님의 보상을 믿고 있다는 제자들이라면....."
2001.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