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4주간 토요일 복음(마르 6, 30-34)
대부분의 단체에서는 하나의 행사가 끝나고 나면 평가회를 하는 것이 보통입
니다.
평가회를 하는 목적은 다음 번에는 좀 더 나은 행사를 치르기 위해서라고 생
각합니다.
잘 된 점은 잘 기록하여서 다음 행사에 반영하고, 잘못된 점은 대안을 세워
서 다음 기회에 보완해 보자는 생각이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회의를 사람들은 무척이나 부담을 느끼고 싫어하는 경
향까지 있습니다.
왜냐하면 행사기간 중에 참고 있었던 불만을 터뜨리는 시간으로 오해하는 사
람들이 종종 있고, 또 그런 사람들의 발언들로 인해서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잘못하면 일을 잘 끝내놓고도 평가회 때문에 서로 반목과 갈등이 표면화되어
결국 공동체에 분열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평가회의 모습은 어떠셨는지 들여다보기로 합니다.
제자들을 파견하시어 당신의 일을 대행시키신 후, 제자들이 돌아와서 보고하
는 모습이 공관복음서에 다 나와 있습니다.
오늘 복음(마르코)에서는 잘했다는 칭찬도 못했다는 질책도 아무 말씀 없이
제자들을 한적한 곳으로 데리고 가서 쉬도록 배려하시는 모습으로 나와있습니
다.
마태오와 루가복음에서도 대체로 이와 같이 무덤덤한 매력없는 모습입니다
만, 일흔 두 제자를 파견하시고 맞으시는 부분에서는(루가 10, 17-24) 더없
이 인간적인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일흔 두 제자가 기쁨에 넘쳐 돌아와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들까
지도 복종시켰습니다."하고 보고를 했답니다.
예수님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나는 사탄이 하늘에서 번갯불처럼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제자들과 예수님의 표정과 몸짓이 상상이 갑니까?
"내가 너희에게 뱀이나 전갈을 짓밟는 능력과 원수의 모든 힘을 꺾는 권세를
주었으니 이 세상에서 너희를 해칠 자는 하나도 없다."
한 술 더 뜨시는 예수님.
과장이 심해도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시는 주님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혹시, 주님을 점잖으신 모습으로만 생각하고 계셨다면 이 부분에서의 예수님
의 인간적인 면모와 기가 막힌 유머를 알아들으실 수 없을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가볍고 촐랑거리는-죄송!- 모습까지 보이고 계시지 않습니까?
제자들의 성공을 그들 자신보다 기뻐해주시는 예수님의 인간적인 면모에서 저
는 감동합니다.
그러나 역시 주님은 주님입니다.
제자들이 진정 기뻐해야 할 것은 그들이 한 <일> 때문이 아니라 <하늘에 이름
이 기록된 것>에 대해 기뻐해야한다는 올바른 가르침을 빼놓지 않으신다는 것
이지요.
제자들보다도 한층 더 신명이 나신(21절-새번역) 이 순간에도 빈틈없이 제자
들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주시는 지도자로서의 면모 또한 감동에 감동을 더하
는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쁨에 도취되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어서 하느님 아버지께 보고하
시고 감사기도를 바치시는 예수님.
그 기도 안에서 그처럼 칭찬해 주시던 제자들을 <철부지 어린이들>이라고 하
시는 예수님.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에 대해 하마터면 기고만장할 뻔한 제자들은 이 기
도를 듣고 얼마나 당황했을까요?
지혜롭고 똑똑해서 일을 잘 끝냈다는 은근한 자랑이 무참히도 사라지는 순간
입니다.
기도를 마치시고 머쓱해진 제자들을 그윽히 바라보시며 주님은 말씀하셨죠.
그들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가에 대해서....
이것이 주님의 평가회의 모습이었습니다.
또 생각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일흔 두 제자의 평가회의 모습과 열두 제자의 평가회의 모습은 아주 분위기
가 다릅니다.
소위 핵심 제자들에게는 사사로운 감정을 드러내 보이지 않고 계십니다.
논어의 위정편에 나오는 덕으로 다스리는 지도자의 모습, 노자의 성인(聖人)
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지도자가 사사로운 감정을 노출시키면 아랫사람들이 소신을 가지고 일을 하기
가 어렵고, 윗사람의 비위만 맞추기에 급급해 지기 마련입니다.
교회를 책임지고 이끌어갈 핵심제자들에게는 또 다른 가르침이 필요할 것입니
다.
<일>도 중요하지만 주님과 함께 하는 쉼 즉, 기도가 제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가르치시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 주님께는 일의 성공 여부보다 제자들 자신이 더욱 소중하다는 것을 보여주
시는 것은 아닐지요?
단체 안에서 행사를 치르면서 느끼는 일입니다.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지도자 밑에는 늘 빈틈없이 일 잘하는 재주꾼이 필요
할 뿐입니다.
그런 지도자는 늘 일의 성과에만 신경을 쓰느라고 보다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맙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은 돈을 받고 일하는 전문가가 아닙니다.
주님을 위해,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만 가지고 모인 <철부
지 어린아이들>이라는 것이지요.
자신의 부족함도 주님을 위해 쓰일 수 있기에 기뻐 뛰는 사람들이랍니다.
그들의 어설픈 성공도 주님은 신명나게 받아들이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일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주님을 닮은 지도자.
교회의 일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어떤 일이어야 하는지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는 지도자.
서로를 격려하며 부족한 것을 보완해주면서 기쁨으로 일하는 신명나는 단체.
그런 단체 안에서 일하면서도 자만하지 않는 일꾼들.
주님이 교회에서 단체일을 하도록 불러주신 것은 이런 연습을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연습이 잘 되어야 다른 곳에 가서도 잘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교회는 예수님 가르침의 실험무대, 연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혹 피하고 싶은 평가회를 만드는 지도자는 안계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