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묵상]
금단의 열매-가장 큰 선물
연중 제5주간 수요일 독서(창세 2,4ㄴ-9. 15-17)
-언젠가 친구들에게 써 보낸 편지에서 퍼왔습니다-
하느님이 주신 모든 선물에는
그 안에 금단의 열매가
늘 함께 들어 있었다
왜 그 안에 그런 것이 있냐고
도대체 무슨 뜻이냐고
묻기보다는
그것 때문에 늘 조심스럽게
선물을 즐겨야 한다는 것을
사십이 넘고 오십을 넘어가는 고개 마루에 이르러서야
말 할 수 있었다
조심스레 그분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의 의미를...
조심스레 산다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선물인지를...
이제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미가 6, 8 을 음미하면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선물'이라면.....
모든 지적, 감각적 인식의 능력, 사랑, 재물, 건강, 욕망-이것도 물론 선물
임-....
마지막으로 신을 감지하는 능력...그리고 그분이 인간에게 주셨다는 위험하고
도 가장 멋진 선물인 자유까지.
이 모든 선물들 속에는 늘 그것들을 마음껏 누릴 수 없는, 포식할 수 없는,
멋대로 다룰 수 없는 이 있었다는 거지요.
그걸 '금단의 열매'라고 표현해 본 것입니다.
에덴 동산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그 동산 뿐 아니라 하느님이 주
신 모든 선물에 함께 들어있었다는 것입니다.
도처에 에덴(천국)이 있을 수 있다면 도처에 금단의 명령은 있다는 것이지요.
왜 그것이 거기에 있느냐고 ,도대체 神은 애초에 우리를 시험해 보려고 그 얄
팍한 계획을 세웠던거냐고....왜 처음부터 그런걸 만들어 두었냐고...애시당
초 우리가 실패할 것을 알고 있었지 않았냐고 묻고 따지고 분노했었던 시절
도 있었죠.
살아온 세월을 되돌아다 보는 나이!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시인의 누님 같은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
말이 많던 금단의 열매들은 그것으로 인해 조심스레 그분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안전장치였음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덧붙여 이 무엇보다 가장 큰 선물이었음을 깨닫습니
다.
그것이 결국 마음놓고 마음대로 살아간다는 '참다운 자유'라는 것을 금단의
열매들을 마구 마구 먹어치운 후 배탈이 나고 설사가 나서 진이 빠지고 나서
야 깨달았습니다.
처음부터 안전장치가 필요 없는 완전한 존재를 만들어 놓았더라면 되지 않았
냐고요?
이 에서 완전한 질료가 있었더라면....그보다 신에게서 떼어내어 아메바
식 분열을 한 존재라면...그랬겠지요.
그런데 이런 물음은 너무도 부질없습니다.
우리가 신과 똑같은 존재라면 애당초 왜 그렇게 만들었냐 말았냐할 필요조차
없으니까요.
결국 피조물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바벨의 탑 쌓기'의 발상이 되겠지요.
바다에게 파손된 배조각이 묻습니다.
"왜 파도를 몰고와서 가만히 떠있는 나를 부수어 버리냐"고.
바다는 말합니다.
"그러게 왜 방파제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냐"고.
"그 항구는, 방파제는 내가 너희를 안전하게 해주려고 긴 세월 공들여 만들
어 준 것이 아니더냐 ? 바람이 불고 먹구름이 몰려오면 그 안에 들어가야 한
다고 말하지 않았더냐?"
조각난 배가 묻습니다.
"처음부터 아무리 거센 바람에도 아무리 거센 파도에도 끄떡없는 배를 만들
지 못했냐고 아니 그보다 바람이 먹구름이 왜 필요하냐?"고
바다가 말합니다.
"그 바람 덕분에 너는 기분좋게 항해하고 파도타기를 즐거워하지 않았더냐."
"그 먹구름 덕분에 너는 지친 몸을 항구에 대고 가끔씩 한가하게 쉬지 않았더
냐."
이어서 바다는 위풍도 당당하게 말합니다.
"바람은, 먹구름은, 때로 커다란 해일은, 바다 나의 깊고 깊은 품 속에서 살
아가는 모든 너 아닌 것들을 위해 자주 자주 한바탕씩 불어주고 뒤집어 주고
생기를 넣어주기 위한 나의 배려일 뿐이다."라고.....
"어차피 너는 이고, 나는 이다."
"너가 가 아님을 너는 먼저 알아야한다."라고
자기의 실체를 잘 보고 인정하는 것을 이라 한답니다.
조심스레 걷는 것, 조심스레 살아가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에서 출
발하는 종교적 자세입니다.
허리를 구부리고 눈치를 보면서 비굴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만하지 않으면서 당당하게 자신의 위치를 잊는 일 없이.....
자유를 옳게 쓰면서 주어진 현재의 복락을 기쁘고 감사하게 사용할 줄 아는,
제한선을 넘지않는 비결을 터득해 나가는 일이라고 깨닫는 거지요.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큰 선물이었음이
그래서 금단의 열매가 낙원에서 가장 큰 선물이었음을 말 할 수
있음에 기쁩니다.
이렇게 순순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세월과 체험 덕분이겠지요.
2001.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