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에 갔다가 제대 꽃꽂이를 하는 수녀님을 만나
프리지아 한 줄기를 얻었다.
제일 좋아하는 꽃이 프리지아라고 했더니 핀 꽃이 한 송이,
머금은 봉오리가 두 개 있는 줄기 하나를 주셨다.
아스파라거스도 곁들여 두 줄기.
작은 꽃병에 담아 방의 책상머리에 놓아두었다.
적요하던 방안이 갑자기 환해진 것 같다.
아무래도 내 취향은 꽃들이 만발한 정원보다는 작은 꽃들이 핀
들길을 거니는 게 좋아서 장미나 백합보다는 소박한 프리지아를
좋아하나보다. 장미나 튜울립 같은 예쁜 꽃들은 보고 있는
사람이 없으면 왠지 어딘가 빈 듯한 느낌을 주는데 프리지아는
그렇지 않다. 보는 사람이 있거나 있지 않거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그것은 안으로 감치는 아름다움이 아닐까.
밖으로 뻗치는 아름다움은 어디선가 반향해주는 것이 없으면 왠지
좀 아쉬워지는 것이다.
며칠 전에는 동생한테서 이메일이 왔었다.
세간에서 잔잔한 감동을 주고있는 한 도예가의 장례에 대한
신문기사를 오려보낸 것이었는데 그 제목이 '한 도예가의 들꽃 같은
유언'이었다. 들짐승이 돌아다닐 때 방해가 될 테니
무덤의 봉분도 자연스럽게 만들라는 그 분의 유언은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드러나고 피어나기보다
조용히 숨어피는 들길의 꽃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었다.
들꽃들은 들꽃들끼리 모여 핀다.
좋아하는 사람들은 서로 좋아하는 것도 같은 모양인지
전에 좋아하던 사람도 프리지아를 퍽 좋아했었다.
둘 다 조용하고 뒤에 있기를 좋아했던 탓에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었다.
철은 늘 새로이 오고 프리지아는 해마다 아름답다.
프리지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늘 행복하리라. 그들은 그 고운 노란 빛깔과
소박한 향기에 항상 무심치 않을 마음을 지녔기에....
<2001. 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