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날 밤미사때 강론이 아주 인상깊었습니다.
목동의 모습안에서 교회와 우리들의 역할을 찾아보고 짚어볼 수 있게끔 도움
을 주셨습니다.
목동들은 예수님의 탄생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가 학인을하고 사람들에게 알립
니다.
시대적 상황이 구세주를 기다리는 힘든시기였고 그래서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
하는 때였기에 목동들의 행동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천사들의 목소리를 듣고 놀랄 이유도 없었고 구세주가 나셨다는 말이 이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 입장에서는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다고 생각했을테니까요.
단지 누추한 구유 위에서 태어나신 것을 신기하게 생각할 따름이었죠.
당신의 사람들은 하느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으로 구세주이신 예수님의 오심
을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믿음이 오늘날의 교회를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힘들때만, 고통스러울 때만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강조하지는 않습니까?
저의 모습 안에서도 부분적인 믿음이 마치 전적으로 하느님께 의지하는 믿음
인것처럼 가리워져있는것 같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 믿음.
우리 바오로 가족 중에 한 수녀원에서 있었던 일인데요.
서원을 새로 확장해야할 일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 서원 옆에 있던 식당 자리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는군요.
그래서 책임 수녀님께서 그 식당 들어가는 바닥에 우리 창립자 신부님의 사진
을 몰래 깔아놓고 무조건 기도했답니다.
...
지금 서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절대적인 믿음은 어려운것이 아닙니다.
아주 단순하면서 순수한 것이지요.
바로 여러분의 마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