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풍경]
멋진 항해!
올 스테이션 올 스탠바이!
(All station all stand by!)
선교에서 지시가 내려오면 모든 선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인다.
이 말은 항해용어로 각자 자기 위치로 가서 준비를 하라는
지시인데 항해사들은 선수와 선미, 선교에서, 기관사들은 기관실에서,
부두에 매여있는 로프를 거두어들이거나 양묘기를 작동해서 닻을
감아올리고 엔진을 작동시키는 일들을 하며 바삐 움직인다.
십년 전 초임 기관사이던 나는 엔진 컨트롤 룸에서 엔진 작동지시기를
조작하는 일을 맡았었다.
출항하는 날은 언제나 새로운 기분이었다.
가슴 속에 서늘한 공기가 가득 담기는 듯한 느낌.
먼 바다쪽에 있는 등대와 막 비치기 시작한 아침 햇살, 땡땡땡땡
울리던 긴장감 넘치는 엔진 작동 지시기의 벨소리들 -----이 모든 것은
내가 떠난다는 것을, 이제껏 몰랐던 어떤 곳을 향해 간다는 것을
일깨우는 신호 같은 거였다.
배가 자신과 육지를 잇던 마지막 로프를 거두어들이고 물 위에 혼자
떠있게 되면 해양법상으로 항해가 시작된다. 참 신기한 일이지만
그렇게 항해가 시작되면 그 항구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도
같이 잊혀진다. 짧은 순간이나마 아주 친해졌다고 느껴지던 사람의
얼굴이 어떻게 그렇게 갑자기 잊혀질 수 있는지 참 놀라웠었다.
아마 떠나기 위해서는 지난 것에 매여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나마 알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떠나는 것은 알지 못하는 미래에 몸을 맡긴다는 것이다.
그것은 희망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자신에 매여있지 말고, 머뭇거리거나 서두르는 일 없이
그렇게 내 앞의 새로운 시간을 향해 떠난다.
어떤 일들, 어떤 시간과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 모든 것이 내게는 한 선물이 되리라고 믿으면서....
항해 일지에 늘 적혀있던 말 한 마디.
Bon Voyage(멋진 항해를)!
2001.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