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을 때 조심하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할 수 있다는 것, 능력, 힘은 관계 안에서 권력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권력은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려는 의지'이다.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을 때 나는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싶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할 수 있을 때 겸손해야 한다.
모든 것 -- 말하거나 읽거나 듣고 보거나 움직이거나
생각할 수 있는 이 모든 것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몸을 움직일 수 있다. 나는 몸을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다.
몸의 겸손이다.
나는 말을 할 수 있다. 나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말의 겸손이다.
나는 생각할 수 있다. 나는 생각을 막되게 하지 않는다.
생각의 겸손이다.
이렇게 되면 존재 자체가 겸손이 되리라.
겸손하게 되기 위해 우리는 절제를 한 방법으로 택하지만
겸손은 절제 이상의 것인 것 같다.
누군가 선물로 준 사진 한 장이 있다.
'겸손'이라는 제목의 사진 한 장.
어떤 수사님이 만든 목각상을 찍은 것인데
그것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조그마한
사람의 반신상이다.
거무스름한 나뭇결로 된 그 목각상은 자신을
내세우기가 부끄럽다는 몸짓을 하고 있다.
겸손...
하지만 나는 벌써 글러버린 것일까.
이렇게 말을 장황하게 해버렸으니.....
<2000. 1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