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 릿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떠드는 소리가 그쳤다. 나무 무대로 나선다.
문기둥에 기대서서
멀리 울리는 산울림으로
내 생애에 일어날 일을 생각해본다.
수많은 오페라 글라스의 시야를 따라
밤의 어둠은 나를 겨누고 있다.
아버지, 할 수만 있다면
내게서 이 잔을 넘기게 하소서.
나는 당신의 완강한 목적을 좋아하고
내 역을 맡는 데 동의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연극이 상연되고 있으니
여기 나를 한 번 나오게 해주십시오.
그런데 연기의 순서는 이미 계획되어
피할 수 없는 길의 종말에 이르렀다.
나는 혼자서 모든 것이 바리새교의 위선에 빠진다.
제 목숨대로 살기란 들을 건너듯 쉬운 일이 아니다.
1.
어떤 일에 마주쳤을 때, 그 일이 어렵고 두려운 일일수록
우리 마음은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나는 달리기를 정말 못하고 또 자신도 없는데
어렸을 때 운동회나 체력장을 하면서 백 미터 출발선에
서면 불안하고 어서 그 순간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었다.
보리스 파스테르타크의 [닥터 지바고]에는 지은이의 마음을 그대로
담은 듯한 시가 실려 있다. 물론 소설 안에서는 지바고가 쓴 시로
되어 있지만.
2.
삶의 갈림길에서 만난 상황은 마치 누군가가 연출하는
연극에 나오는 배우와도 같다.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그는 이윽고 관객들의 소리가
그쳤고 이제 무대에 나설 때라는 것을 안다. 백열 조명이 가득한
무대로 나서면 관객석은 깜깜한 어둠뿐 눈앞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저기에는 나를 살피는 오페라 글라스들이 가득하리라.
나는 이 연극에 나오고 싶지 않다.
그는 기도해본다.
'...지금은 다른 연극이 상연되고 있으니
여기 나를 한 번 나오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계획된 연극은 배우를 위해 바뀌지 않는 것.
그는 '피할 수 없는 길의 종말에 이르러' 있음을 안다.
3.
누구나 갈림길에 서 있음을 느꼈을 때
무대에 서서 생애에 일어날 일을 생각해보며
어둠에 싸인 저편을 응시하는 햄릿의 마음을
느낄 것이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파스테르나크가 아마도 더운 한숨과 함께
내뱉었을 마지막 한 마디를 되뇌이는 것 외에
다른 일은 없는 것은 아닐까.
"제 목숨대로 살기란 들을 건너듯 쉬운 일이 아니다."
<2000. 1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