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벌써 십일 월도 중순을 넘어섰다.
이젠 날씨가 아주 추워져서 목도리를 하지 않으면
찬 바람에 감기 걸리기 쉬울 것 같다.
나무들도 잎들을 다 떨구고 겨울 맞을 준비를 마쳤고
학교 오가는 길에 있는 토끼며 돼지들도 제 집 속에서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다.
시간이 언제 이렇게 흘렀을까.
2.
고맙기 그지 없다.
빛의 하느님.
날마다 빛으로써
새 날 이루고...
새벽기도가 끝나갈 때쯤 되면 경당 창밖이
어느 새 밝아져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곤한 잠을 찬물로 씻어내고 경당에 들어설 때는
사위가 온통 깜깜했었는데 언제 이렇게 밝아진 것일까.
저녁기도 때에도 또 그렇게 날은 어두워져서
성체강복을 받기 위해 깊이 수그렸던 이마를 들면
세상은 어둠 속에 잠겨 있다.
그러면 낮동안에 있었던 모든 일들은 마치 꿈결처럼
느껴지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경당에 앉아 있었던 것처럼
여겨진다. 날이 밝아지고 어두워지는 것이 꼭 한 순간에
일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더 없이 거룩하신 우리 하느님
가없는 저 하늘의 수없는 별을
환하게 불을 켜서 밝혀주시고
곱게도 반짝반짝 빛내주시네...
그렇게 가없는 인간의 시간이,
하느님의 시간이 흘러간다.
# 인용된 노래들은 수도자의 기도와
성무일도 연중 평일 수요일 저녁기도의 찬미가.
<2000. 1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