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 수(鄕 愁)
어렸을 적
향수는 작은 한 장의 우표
나는 여기, 그리고
어머님은 저 쪽
자란 뒤
향수는 좁디좁은 한 장의 선표(船票)
나는 여기, 그리고
신부(新婦)는 저 쪽
............
지금
향수는 얕디얕은 한 굽이 해협(海峽)
나는 여기, 그리고
대륙은 저 쪽
위 꽝 중(余 光 中)
오늘은 멀리서 온 편지를 받았습니다.
올봄에 다른 나라로 공부하러 떠난 지인은
아마 고향이 그리워진 모양입니다.
가끔씩 학교 가는 길 근처 호숫가에 나갔다가 돌아오곤 한다고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향수는 내 마음 밑에 숨어있는 주조음이기도 합니다.
일찍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학교를 다닐 때 나도 밤에는
집생각이 나서 몰래 울기도 했었거든요.
그럴 때면 마침 학교에서 배우던 '켄터키 옛집에...'나 '그리운 날
옛날은 지나가고...'하는 흑인 영가들을 불렀고 고향집을
끄적끄적 그리며 마음을 달래곤 했었습니다.
정말로 한 장의 우표에 담기는 향수 같은 거였지요.
그 뒤로 직업 때문에 배를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시절에는
외로움과 그리움이 섞인 향수가 해협과 물굽이마다
걸쳐있었습니다.
낯선 타이완 시인 위꽝중의 시를 좋아하게 된 이유입니다.
그 땐, 어디서나 푸른 바닷물을 들여다보며
"바다는 어디나 서로 이어져 있다. 이 물따라 끝없이 가다보면
내 고향집 선창가에도 닿겠구나..."
생각하곤 했습니다.
멀리서 온 지인의 엽서를 앞에 놓고 문득 그 시절의 향수에
잠겨봅니다.
아랫집 아저씨한테서 얻어온 모과를 몇 개 책상맡에 두었더니
방안에 모과향이 가득합니다.
발신인 주소도 없이 엽서를 부친 먼나라에 있는,
향수에 젖은 지인과 외로워하는 모든 이들에게
모과향을 답장삼아 보냅니다.
<2000. 1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