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구마를 캤다.
봄에 읍내 장에 가서 고구마 순 두 단을 사와
비를 맞으며 두덕을 치고 고구마 순을 심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고구마 캘 철이 되다니....
시간은 용서가 없고 그 시간 동안 무슨 일을 해서
어떤 열매를 거두어 들이는가 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느님은 고구마순을 만드시고 햇빛과 비를 내려주시는
일을 하신다. 고구마를 심고 거두는 것은 우리의 일.
흙고랑을 호미로 헤집어 빨간 고구마를 캐며 고구마가
마치 어린 아가 엉덩이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를 위해 이렇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2.
엊저녁엔 달이 너무 밝았다.
온세상이 차운 하얀 빛속에 잠겨
하늘엔 구름과 별들이 흐르고
땅엔 산 그림자 속에서 나뭇잎들이 흔들린다.
오랜만에 찾아온 정다운 손님이 돌아가는 길을
배웅하고 혼자 밤길을 걸어 돌아왔다.
달이 밝으면 생각나는 얼굴들.
오래된 옛날의 달빛 아래서 웃던 아이의 미소.
만 리 밖 고향에 계신 늙으신 어머니...
율곡의 어머니 사임당 신씨는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을 이렇게 노래했었다.
밤마다 달을 향하여 기도하노니
바라건대 생전에 한 번 더 뵙고저.
夜夜祈向月
願得見生前
3.
쓰다보니 마치 일기장의 한 페이지처럼 되어버렸다.
나는 누구에게 보이려고 이런 글을 쓰는 걸까?
...사람이 적막을 느낄 때 창작은 탄생한다.
마음 속이 깨끗할 때 창작은 탄생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창작의 뿌리는 사랑이다.
陽朱에게는 저서가 없다. 창작은 자신의 마음을 적는 것이다.
그러나 항상 보는 사람이 있기를 바란다. 창작은 사회성을 지닌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에게만 보이고 싶을 때도 있다.
친구나 애인에게.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朝花夕拾)]에서
루 쉰
<2000. 10.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