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코프스키의 [순교일기]를 읽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씻지도 않고 옷 입은 채로 잠이 들었다가 새벽녘에 깨었다.
이런 일은 좀체 없는데 아마 어제 세리 때문에 마음을
많이 썼던 게지.
몸을 많이 움직여도 피곤하지만 마음을 많이 써도
피곤한 것은 마찬가지인 것 같다.
우리는 개를 두 마리 키우고 있(었)는데
그 중의 한 마리 이름이 세리(였)다.
털이 복슬복슬한 잡종개인 세리는 그동안 자꾸 속을 썩여서
어제 장에 가서 팔리는 운명이 되고 말았다.
동네 밭에 들어가 모종해 놓은 작물을 마구 밟아 놓아
원망을 듣는가 하면 아랫마을의 축사와 돈사를 돌아다니며
죽은 닭과 새끼 돼지를 물고 와 성모상 앞 잔디밭에서
천연덕스럽게 먹고 있는 등 그동안 무던히도 우리 속을 썩였다.
마침 어제가 25일로 읍내에서 오일장이 서는 날이었기 때문에
봉고의 뒷칸에 싣고 가서 개장수에게 팔아버렸다.
녀석 때문에 골머리를 앓긴 했지만 키운 정 때문인지
개장수에게 넘겨주고 돌아서는 마음이 개운치를 않았다.
생전 처음 차를 타고 멀미를 해서 뒷칸을 엉망으로 만들고
기가 죽어 낑낑대는 녀석을 팔고 돌아오는 길에 살아있는 것은
함부로 키울 게 아니구나 생각했다.
가끔씩 내 마음이 어떤 사람이나 일이나 사물의 곁에
머물려 있으려 하는 것을 느낀다. 흐르는 물이 여울 같은 데서
소용돌이를 만들며 머물러 있는 것처럼.
옛날 스님들은 머물러 있으려는 마음을 늘 경계하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마음이 머무르면 정이 생기고 정이 생기면
집착하고 집착하면 괴로움이 생긴다.
무슨 도인처럼 말하긴 했지만 내 마음이 자유로우려면 머물러
있고 싶어하는 마음을 버려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두려움 없는 사랑'의 전제조건이 된다는 것은 참 역설적이구나....
... 세리가 없는 집 안팎을 돌아보며 생각하는 요즈음이다.
<2000. 5.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