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풍경]
내가 좋아하는 쓸쓸한 하느님
1.
내가 좋아하는 쓸쓸한 하느님.
경당에 가서 혼자 앉아 있으면 벽 위 십자고상의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다.
언제나 거기 혼자 계시는 예수님.
머리 숙여 못 박힌 당신 발치를 내려다 보시는 예수님은
참 쓸쓸하게 보인다. 그 분의 비스듬한 볼 위로 언뜻 눈물이라도
한 방울 흐를 것만 같다. 그 쓸쓸함은 사랑하는 제자들마저 당신 곁을
떠나버렸다는 것, 늘 의지하던 하느님 아버지마저 당신을 버린 게
아닐까 하는 심정에서 나오는 것이겠지....
'나의 사랑은 헛된 것이었을까. 나의 사랑은 아무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일까?'하는 마음에서.
육신의 고통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것이지만 그 위에 마음의 아픔까지
덧대어져서 그 분은 몸과 마음의 고통을 함께 겪고 있다.
2.
방학이 되어 본원에 올라와 맡은 사도직은 전국 서원으로 가는
책들을 뽑고 정리하는 일이다. 첫날 부산하게 일을 하고 있으려니까
연세가 많으신 요한 아저씨가 반가워하며 말씀하신다.
"웃지 말어, 눈가에 주름이 너무 많이 생겼어."
주름살은 지나간 시간과 사람들이 내게 남긴 흔적 같은 것일까.
문득 쓸쓸해진다. 쓸쓸한 사람은 누구나 그 분을 찾아갈 수 있다.
그분은 누구보다도 외로웠고 쓸쓸한 분이었으니까.
그 쓸쓸함 때문에 그 분은 찾아오는 누구에게라도 친구가, 형제가,
연인이 되어줄 수 있다.
벽 위의 고상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렸을 때 읽은 [정글북]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아홉 살 때였었던가. 내가 참 좋아한 키플링의 소설
[정글북]에는 주인공 모글리에게 하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있었다.
"찾아 오너라, 자주 찾아 오너라. 이제 나도 네 어미도
많이 늙었으니 말이다."
내게는 이 말이, 늘 혼자 계시는, 혼자서 쓸쓸히 못에 박힌
당신 발치를 내려다 보고 계시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들린다.
이천 년 동안 그렇게 계시는,
내가 좋아하는 쓸쓸한 하느님의 말씀처럼.
# '내가 좋아하는 쓸쓸한 하느님'은 마종기 시인의
시에서 인용된 것.
2000.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