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풍경]
손 이야기
나는 내 손이 일하는 손이기를 바랬습니다.
어린 시절 내 주위에는 그런 손을 가진 사람들뿐이었지요.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는 사람들, 물때가 안 맞을 때는 큰 팽나무에
그물을 걸어놓고 그물을 손질하는 사람들, 산에 가서 나무를 베어다
배를 짓던 목수 삼촌, 장광에서 항아리를 씻고 돌절구를 움직이던 할머니.
그이들의 손은 하나같이 두툼하고 옹이가 져서 어린 내 손,
부드럽고 발그스레 혈기가 돌던 작은 내 손하고는 달랐습니다.
일을 하던 그들이 손을 들어 이마의 땀을 훔치기라도 할 양이면 깊은 이마의
주름과 두툼한 손은 그 자체로 한 표정이었습니다.
그 시절, 내 여린 손도 언젠가 크고 굳세어져서 고집 센 염소한테 끌려가지도
않고 뒷산 밭에서 나르는 고구마 자루도 무겁지 않게 덥석 메고 오리라
생각했습니다.
낮에 열심히 일을 하고 크고 힘센 손으로 밤에는 책장을
넘기는 꿈을 꾸며 마음이 기뻤었지요.
그뒤로 정말 책장을 뒤적이며 많은 것을 배웠지만,
상방치환과 미토콘드리아, 인수분해와 무리수, 은유법과 도치법,
Tom과 Jane, 캐비테이션과 카루노 사이클들을,
그 많은 책속의 지식들도 그동안 나를 스쳐간 일하는 사람들의 손만큼
박진하게 나를 가르치지는 못 했습니다.
나하고 동급생이면서도 더러운 교실 바닥을 닦은 밀걸레를 서슴없이 손으로
주물러 빨던 친구, 하루종일 뾰족한 망치로 배의 갑판을 두드리고 페인트 칠
을 하던 선원들.
사람의 손을 즐겨 작품의 주제로 삼았던 로댕의 조각들 가운데는
사람을 빚어 만드시는 하느님에 관한 것도 있습니다.
일하는 손은 로댕에게 있어서는 경건한 손이었던 거지요.
일하는 하느닝의 손을 떠올려 보며 내 손이 일하는 손이기를,
책장을 넘기는 공부하는 진리 탐구의 손이기를,
하느님을 찾아 겸손하게 모아진
기도하는 손이기를 다시 희망해 봅니다.
2000.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