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묵상]
주님이 뽑으신 오합지졸들
아이고, 죄송합니다. 聖 사도님들을 이렇게 막 불러서 말이죠.
하지만 사도가 되기 전에 일로 국한되오니 화내지 마시옵소서!
그래도 이 말만은 꼭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이 세상에 정신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친 4대 성인들
을 살펴보면,
연대순으로 먼저 석가모니는 자신과 같이 고행하던 5명의 수행자들을 첫 번
째 제자들로 삼았고, 공자는 걸출한 인물 안회, 자로, 자공, 증삼 등등 학문
깨나 한다는 제자들을 데리고 다녔으며, 소크라테스는 플라톤과 같은 희랍 최
고의 지성들과 철학자들을 상대하지 않았나 말이에요.
모두들 적어도 나름의 진리를 깨우치려고 정진했던 사람들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 주님은 이게 뭡니까? (김 동길 버젼으로...)
어부 4명, 세리, 혁명당원, 나머진 뭐하든 사람인지도 모르겠고, 이건 순전
히 제 생각인데 오죽 변변치 못했으면 복음서에서 이름도 헷갈리냐 말입니
다. (못 믿겠다는 분은 루가, 마르꼬, 마태오의 사도 명단을 비교해 보세
요.)
그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서 그렇다구요?
그들이 너무 겸손해서 이름을 드러내지 않아서 그렇다구요?
그러면 할 말이 없습니다만 이름은 그렇다치고 객관적으로 따져보자구요.
세리와 혁명당원은 또 뭡니까?
도대체 인선이 잘못 되었어요. 고르려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만 뽑아도
일치가 어려운게 공동체인데-멀리서 예를 찾을 것도 없이 같은 신앙을 가지
고 있다는 교회 안에서는 안 그런가요?-
한 명은 온 민족의 지탄의 대상이고, 한 명은 무력으로라도 자기 민족을 구해
야겠다는 자칭 애국 결사대 출신이니 처음부터 선택이 잘 못된 것 아닙니까?
서로 손 발이 맞겠어요?
제자들 면면은 또 어떻습니까?
다른 聖人들의 제자들을 보면, 뭔 소린 지도 모르겠는 뜬 구름 잡는 이야기
같은 것도 척척 알아듣고 질문하고 대답하고들 하던데...
우리 주님의 제자들은 허구헌 날 주님의 말귀를 잘 알아듣지도 못하고, 자기
들끼리 싸우고, 졸고, 덤벙대고 꼭 저같이 생겼지 뭡니까?
그러니 마지막 한 명은 견디다 못해 주님을 팔아먹고 도망가게도 생겼지 뭡니
까.
모두 깨어져서 일찌감치 제 갈 길로 안간 것이 신기합니다.
그런데 더 신기한 일은 이처럼 별 볼일 없고 생각도 다 다르고 지극히 평범하
기만 한 그들이 해 놓은 일이 기가 막히다는 것 아닙니까?
세상에서 주님을 흠모하고 공경하는 사람들이 이처럼 많다는 사실이 증명하
지 않습니까?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얘기할 것도 없고 우리와 똑같은 생각은 아니지만 이슬
람교도들도 예수님을 성인으로 추앙하고 있으며, 그리스도교 신자는 좋아하
지 않지만 예수는 좋아한다는 간디의 말에 동감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요?
베스트 셀러 1위는 역시 성경이 아닙니까? -천주교 신자도 그런지 모르지만-
오죽하면 예수는 최고의 경영능력을 가졌다고 "최고 경영자(CEO) 예수"라는
책이 불티나게 팔리겠어요?
그러니까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고 하는 거겠죠.
그래서 저처럼 별 볼일 없고 못난 사람들도 주님 앞에선 기대할 바가 있는 거
겠죠.
그래서 다른 곳에서는 매일 짓눌리고 얻어터지고 기를 못 펴도 주님 앞에 서
면 힘이 솟고 용기가 나고 신바람이 절로 나는 거겠지요.
주님, 이런 제자들을 뽑아 최고의 사도들이 되게 하신 숨은 뜻이 거기에 있었
네요.
사도님들, 실수 투성이인 인간적인 분들이어서 되게 고맙네요.
사도들, 만세!
주님, 만만세!
추신. 주님, 그런데 요즘 교회도 이런 사람들을 뽑나요?
2001.01.19